(창세 14,18-20; 1코린 11,23-26; 루카 9,11ㄴ-17)
<성체성사, 영성체, 나눔, 사랑>
바오로 사도는 성체성사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6)."
이 말은,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선포하는 일이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죽음'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은 단순히 말로만 전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신앙인의 행동(삶)으로 증언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한 말은,
희생과 사랑을 행동(삶)으로 실천하면서
성체성사를 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코린토 교회의 신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들을 꾸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그것을 먹을 때,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합니다.
여러분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1코린 11,20-22)."
당시에는 성체성사 전에 공동체의 일치와 친교를 위한
'사랑의 만찬'(아가페 식사 - 주님의 만찬)을 행했는데,
각자 집에서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성체성사와 분리되어 있는 식사가 아니라 성체성사의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부작용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배불리 먹고, 가난한 이들은 배가 고프고...
'나눔'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고,
공동체의 일치와 친교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런 식사는 주님의 만찬이라고 할 수 없다고 꾸짖습니다.
'희생 없는 나눔'은 '나눔'이 아닙니다.
('희생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가 먼저 배불리 먹고 남은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은
'나눔'이 아닙니다.
자기의 배고픔을 참으면서 나누어 주어야 '나눔'입니다.
내 음식을 배고픈 너에게 주고, 너의 배고픔을 내가 갖는 것.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시는 장면은
바오로 사도가 꾸짖은 코린토 교회의 모습과는 정반대입니다.
그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루카 9,17)." 라는 구절입니다.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습니다.
더 먹은 사람도 없고 덜 먹은 사람도 없습니다.
"남은 음식이 열두 광주리나 되었으니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빵이 그렇게 많았다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빵과 물고기에 대해서는 기적을 행하셨지만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과정에서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의 빵과 물고기를 그냥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이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이 오천 명 이상의 군중에게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는 상황을 상상해 봅니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을 것입니다.
맨 뒤에 있는 사람은 한참동안 기다려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에 배고픈 사람들이(또는 힘 있는 사람들이)
서로 먼저 먹겠다고(또는 더 많이 먹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또 자기가 받은 빵과 물고기를 다 먹은 다음에
옆에 있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먹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또 처음에 받은 빵과 물고기를 감추어 두고
자기는 안 받았다고 거짓말하면서
또다시 받아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또 제자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만 먼저 주거나 더 많이 주는
불공정한 분배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의 갈증과 굶주림은 더 심해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분명히 제자들은 공정하게 나누어 주려고 애를 썼을 것이고,
사람들도 다투거나 욕심내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았을 것입니다.
자기 차례가 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을 것이고,
식사 양이 원래 적은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또는 덜 배고픈 사람이 더 배고픈 사람에게
자기의 빵을 양보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었던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은
배만 부른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도 행복해졌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함께' 배부르고, '함께' 행복해진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진짜 기적입니다.
만일에 사람들의 배만 부르고
마음과 영혼은 여전히 갈증과 굶주림에 시달렸다면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영성체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먹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기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겠다고 다짐하고,
또 그렇게 실천하는 일입니다.
희생하고 사랑하면서,
모두가 함께 배부르고 행복해지는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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