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6월7일 다해 예수 성심 대축일

dariaofs 2013. 6. 7. 08:32

 

                                                                                     (루카 15,3-7)

 

 

<예수님의 사랑>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루카 15,4)"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애타는 심정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예수 성심)'입니다.

 

열 명의 아들이 있는데 아홉은 건강하고

하나는 병이 들어서 죽어가고 있다면,

그 아들 하나 때문에 부모는 애가 탑니다.

다른 아홉은 덜 사랑하고 그 하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열 아들을 똑같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그 아들이 건강을 되찾으면 부모는 크게 기뻐합니다.

다른 아홉이 항상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약한 하나가 다른 아홉처럼 건강해진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기뻐할 때 다른 아홉 명의 아들들도 함께 기뻐하게 됩니다.

그래서 잃은 양의 비유에서 아흔아홉과 하나는 대립관계가 아닙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다는 것은

그 아흔아홉 마리를 아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잃은 양'에 대한 애타는 심정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또 아흔아홉 마리와 한 마리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잃지 않은 양과 잃은 양의 비율이 99대 1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야 할 '잃은 양'입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세리들과 죄인들'을 받아들이는 이유를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비유인데,

세리들과 죄인들만 '잃은 양'이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잃은 양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잃은 양'에 포함됩니다.

그들 자신은 그것을 부정하지만,

예수님의 기준으로는 그들도 세리들과 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신자로 등록되면,

'잃은 양'에서 '되찾은 양'으로 바뀌는 것인가?

그걸로 끝나는 것인가?

 

"......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한 10,4-5)."

 

이 말씀을 명령으로 바꾸면,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어야 하고, 목자만을 따라야 한다.

또 양들은 낯선 사람을 피해 달아나야 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가 됩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더라도

옆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소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왜 꼭 그 길로만 가려고 하느냐? 이쪽으로 길을 바꿔라.

이 길이 더 편하고 좋은 길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유혹의 소리와는 정반대로,

당신의 뒤를 따르면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예고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마르 10,29-30)."

 

예수님 뒤를 따르는 길은 결코 편안하지 않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그런데도 우리가 예수님 뒤를 따라가는 것은

그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

 

우리는 이렇게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편안하고 넓은 길로 데리고 가실 것이지,

왜 꼭 좁고 험한 길로 데리고 가시는가?"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를 유혹하는 소리들을 다 막아버리실 것이지,

왜 우리가 유혹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사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게 되고 당하게 되는 고통들과 유혹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이고, 파스카의 신비에 속한 일들이어서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속 시원히 대답할 수 없는 때가 많습니다.

 

앞장서 가신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고,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러나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요한 10,17)."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질문을 이런 다짐으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좁고 험한 길을 가더라도

(많은 유혹과 고통을 겪고 있더라도)

주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또 주님만이 승리자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참고 견디면서 주님만을 따르겠습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