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7,11-17)
<예수님>
6월 9일의 복음 말씀은
루카복음 7장 11절-17절,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시다.'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로 가시는데,
제자들과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루카 7,11).
'제자들과 많은 군중'은 곧 일어나게 될 기적의 목격자이고 증인입니다.
예수님 쪽에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제자들과 많은 군중'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일이 됩니다.
이야기의 내용만 보면,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가 장례 행렬과 마주친 것은 '우연'인데,
장례 행렬과 마주치게 될 것을 아시고
의도적으로 그 고을로 가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어떤 과부의 젊은 외아들입니다(루카 7,12.14).
당시 그 지역에서는 '과부'는 대표적인 소외계층이었습니다.
그래서 '과부의 젊은 외아들'이 죽었다는 것은
대단히 불행하고 슬픈 상황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루카 7,13)"
복음서 저자는 특별히 '주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곧 하시게 될 일은
'주님으로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어머니를 가엾게 여기셨습니다.)
여기서는 그 과부의 '믿음'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과부가 예수님을 알고 있었는지,
또 예수님을 믿고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떻든 그 과부는 예수님께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고,
자기의 사정을 호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과부가 예수님을 알았든지 몰랐든지 간에,
예수님을 믿었든지 안 믿었든지 간에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상관없이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울지 마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이제 곧 당신이 하실 일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분입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묵시 21,4)."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의 눈물을 닦아 주시기 위해서
과부의 아들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5)."
이 말씀에서 '내가 너에게 말한다.' 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한과 능력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신다는 것,
예수님은 죽음을 지배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다른 장면들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죽은 딸에게
"아이야, 일어나라(루카 8,54)." 라고 명령하셨고,
무덤에 누워 있는 라자로에게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명령을 알아듣고 일어났을까?'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에게 명령하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죽음아, 그 젊은이를 놓아 주어서 일어나게 하여라."
죽은 사람이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루카 7,15)
그가 확실하게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죽음에서 깨어난 그 젊은이는 아마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는(루카 7,15) 말은,
울고 있던 그 과부에게 '기쁨'을 돌려주셨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본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고 하거나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 기적이 분명히 하느님의 기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권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안 믿었던 사람들은 믿게 되었고, 믿었던 사람들은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고,
'가엾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분'이고,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믿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이나
일시적인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이고 궁극적이고 영원한
구원, 생명, 평화를 얻기 위해서 믿는(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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