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5,20ㄴ-26)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화해>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1-22)."
이 말씀은 모욕과 같은 정신적인 살인도 살인죄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상대방이 뭔가 잘못한 일이 있기 때문에 화가 났을 것이고,
미워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 사람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게 되었을 텐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그 상대방의 잘못이 무엇이든지 간에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증오심과 분노가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죄를 못 본 척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 경우에나 시도 때도 없이 '내 탓이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탓이오.' 라는 말 자체는 좋은 말인데,
세상의 악행과 불의에 대해서도 '내 탓이오.' 라는 말만 하면서 방관하고,
정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숨어 있기만 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그 악행과 불의의 공범이 되는 것입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마태 18,15-17)."
우리는 죄와 악을 막아야 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나 증오심과 분노에 사로잡혀서
심판관 역할을 하거나 사적으로 복수하면 안 됩니다(마태 7,1).
'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정의로운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심판과 처벌은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비판하고 꾸짖고 타이르는 것도 사랑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선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그 방법이 악하면 안 됩니다.
사실 증오심과 분노는 자기 자신을 먼저 해치는 악한 힘입니다.
평생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살다보면 자기 인생이 먼저 망가질 것입니다.
우리는 미움의 힘이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진보니 보수니 하면서 편을 갈라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증오심을 통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탄에게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
이 말씀은 앞의 말씀과 대칭을 이루는 말씀인데,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상대방이 나를 증오하고 있고 분노하고 있다면
상대방의 증오심과 분노를 탓하지 말고
내가 먼저 가서 사과하고 용서를 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에게 미운 짓을 한 사람만 생각하고
자기가 누군가에게 미운 짓을 했다는 것은 잊을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꾸어 준 돈은 잊지 않고 받아내려고 하면서
자기가 꾼 돈은 잊어버리고 갚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 7,3)"
우리는 '용서할 일'만 생각하지 말고 '용서받을 일'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이 한 평생 살면서
용서받을 일은 하나도 없고 용서할 일만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에 빠지는 것은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감히 하느님 위치로 높이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종교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가 그런 독선에 빠질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되는지,
이미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로 합해서 생각하면
'서로' 화해하라는 가르침이 됩니다.
서로 '남 탓'만 하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미움 받을 짓도 하지 말고,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심판관이 되지 말고, 서로에게 변호인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탄이 되지 말고,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누가 내 이웃이냐고 묻지 말고,
서로에게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루카 10,36-37).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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