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의 사명 안에서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SC 10) 그러므로 “그 효과는 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와 같은 정도로 비교될 수 없다.”(SC 7) 이것은 매 전례 예식에 해당되며 그중에서도 특히 성찬례에 해당된다.
「전례 헌장」(LG 11)이 의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이다.
성찬례는 「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30,2)에 따라 “그리스도인 공동체 생활 전체의 중심이자 정점”이며,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6)에 따라 모든 그리스도교 단체의 “기초와 중심”이고,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39,1)에 따라 “교회의 완성”이며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과 공의회 문헌의 많은 다른 부분들에 따르면 “사제직의 완성”을 의미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전형적인 세 가지 사명으로 제시하는 교육의 사명, 사제로서의 사명, 목자로서의 사명도 결코 교회 공동체의 전례가 차지하는 최고 서열의 위치에는 미치지 못한다. 믿음을 선포하는 증거(Martyria), 믿음을 거행하는 전례(Liturgia), 믿음을 실천하는 봉사(Diakonia)의 순서가
이에 상응한다.
사도들에게 위탁된 선교 사명(마태 28,19-20)에서 그 순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교육의 사명: 증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사제로서의 사명: 전례 행위의 첫 단계),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목자로서의 사명: 병자와 빈민에 대한 봉사(Diakonia) 활동).”
교회와 공동체의 세 가지 기본적 사명에 대한 이러한 구분에 있어서 이 사명들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례 예식의 부분인 강론(=설교)뿐 아니라(SC 35,2) 기도와 찬송의 형태로 이루어지는(SC 33) 믿음의 선포와 행위 역시 믿음의 거행에 속한다.
거꾸로 복음 선포와 형제들에 대한 봉사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전례라고 할 수 있다. 즉 구원을 중개해주면서 하느님을 경배하는 삶의 전례(참조: 5장)로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사명의 상호적인 의존성과 예속성은 탁월한 사목적 중요성을 지닌다. 교회의 전체 삶의 개혁은 단지 하나의 총체적 사목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E.J.Lengeling)
복음 선포와 형제애적 봉사의 영역에만 가중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것이 전례 예식의 형태로 거행되는 파스카 신비에서 나오고(참조: 2장) 파스카 신비로 인도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동시에 전례의 공동체적인 전제들과 귀결들을 유념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전례를 둘러싼 고립된 노력은 별 소용이 없다.
이렇게 보면 전례는 공동체의 한 구심점을 이루는 기능을 지니게 된다.
전례가 이러한 기능을 지닐 때 이것은 (복음) 선포의 중심이 되며,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삶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확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전례가 교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은 결코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로 돌아와 그
리스도께로 마음을 향하지 않는다면, 또 형제애로 결속된 단체에 대해 인간적인 애정을 갖지 못한다면, 전례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전례를 통하여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삶의 모습에 따라 자신에게도 모든 인간들을 구원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전례 중에 받은 선물은 하느님 나라 안에서의, 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서는 곳에서의 사명이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삶의 형식적인 예식화’에 대한 비난도 명백히 무력해진다.
전례는 한편으로 필수적인 ‘수직성’(인간-하느님)을 구체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평성’(인간-동포-세계)을 올바르게 고려할 수 있는 힘과 의무를 부여해 준다.”(Adolf Adam․Rupert Berger)
그러므로 전례는 전해 내려오는 전례 형식을 기념키 위한 보호 차원이 아니다. 또 꾸며진 예식 또는 송가(頌歌)를 위한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열광도 아니며, 어쩌면 마술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예규(禮規)의 편협한 관찰도 아니다.
전례는 공동체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적인 행위를 통하여, 그리고 이 공동체의 감사하는 찬미를 통하여 그리스도교 공동체 삶의 심장 한가운데가 되며, 바로 전체 교회적 삶의 정점이자 원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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