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거행의 주체자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8,2-6)에 언급되어 있듯이, “주님께서 세우신 성소와 참성막에서 직무를 수행하시는 분”이며 “대사제”이며 “중개자”인 그리스도이시다.
1947년 교황 비오 12세의 전례에 관한 교황 교서 Mediator Dei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라는 말로 특색 있게 시작하고 있는데(참조: 갈라 3,20; 1티모 2,5; 히브 8,6; 9,15; 12,24), 이로써 전례의 개혁을 생활 지평으로 유도한다.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의 작업과 하느님께로 온전히 영광 돌리는 작업을 특히 이 지상에서의 파스카 신비를 통해서 성취하셨듯이(SC 5. 참조: 2장),
그렇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의 이 구원의 신비의 완전한 실현을 위하여 언제까지나 현존하시며 특히 전례적 행위들 안에서 현존해 계신다(SC 7. 참조: 3장).
1999년에 개정된 새로운 「로마 미사 전례서 총지침」 27항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우선적으로 “당신의 이름으로 모여 있는 공동체 안에 실제로 현존하시며”
그 다음엔 “직무 수행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고” 그런 다음엔 “당신의 말씀 안에, 또한 본질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찬의 형상(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형상) 가운데에 현존하신다.”
전례 개혁의 주된 동기는, 전례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중개자로서 행위 하시는 그리스도를 그의 정적인 현존이 아니라 역학적인 현존 안에서 묘사하는 것이다(행위의 이행으로서 또한 과정으로서의 전례).

“성찬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얻기 위한 투쟁 이래로, 그리스도의 (역동적) 현존에 대한 가톨릭의 예식은 거의 대부분 성찬례적 형태 하에서의 그리스도의 (오히려 정적인) 현존으로 제한되어 왔었다.”(E.J.Lengeling) 때문에 전례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는 그리스도의 현존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생겨났다.
예로부터 그리스도의 중개자 기능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기도를 마칠 때에 드러난다고 한다. 이것은 양 차원에 다 해당된다(참조: 1장).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로 이르는 구원적 양상, 그리고 우리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로 들어 높여지는 양상에 있어 모두 적용된다.
서방의 신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해 비로소 성령론의 결점을 극복했다.
「전례 헌장」조차도 성령에 관해 언급한 것은 다섯 번뿐이다(SC 2; 5; 6; 43). 여기에서 성령은 모든 전례적 사건의 중요한 거행자이다(참조: 8장). 성령 안에서 구원의 신비가 전례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며 우리의 기도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교회가 성령 안에서 전례적으로 활동하는 것과 똑같이 전례적으로 활동하신다. 이것은 성경에서 매우 빈번히 진술되고(요한 20,22; 사도 8,15-20; 20,28; 로마 8,9-27; 15,16; 1코린 12,13; 갈라 4,4-6; 에페 1,13; 2,18; 5,18; 6,18; 히브 9,14; 유다 20) 전례적 전승에서 명백하게 입증된다:
비록 기도와 제물로 이루어진 우리의 전례적 응답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올라간다 할지라도 구원의 신비는 아버지께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전례적으로 현실화된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교회 안에서 구원의 신비를 현실화하신다. 따라서 교회는 하느님의 모든 백성으로서 그리고 왕의 사제 신분으로서(참조: 1베드 2,9) 전례의 주체이다(SC 6; 26; 33; 41; 47; 83; 85; 90; 98; 102; 104; 109).
교회는 단지 전례를 통해서만 교회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교회의 근본 기능들 중의 하나인 전례 안에서의 교회로서 표현되는 것이다(SC 2; 36. 참조: 4장).
전례는 단지 ‘백성에 대한 봉사’(참조: 1장), 즉 다시 말해서 백성을 위한 사업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모든 백성의 사업이기도 하다.
특정한 전례적 행위들이 그 본질상으로, 혹은 변할 수도 있는 실제적인 규정으로 인해 단지 직무 수행자들에 의해서만 이행될 수 있긴 하지만, 그때 직무 수행자들도 백성 앞에서의 그리스도의 역할 안에서 행동하는 동시에 하느님 앞에서의 신자들을 대표하면서 행동한다(SC 33).
그렇지만 전체로서의 공동체의 전례적 집회는 존재하며 그 안에서 평신도들도 전례의 거행자이다(참조: 9장).
따라서 전례신학적으로 비가시적인 전례의 거행자와 가시적인 전례의 거행자가 구별될 수 있고, 이때 세례를 받아 가시적으로 공동체 안으로 가입된 모든 사람들은 진정 전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는 그저 단지―1917년의 『교회법전』(can.2256)이 규정한 바와 같이― ‘가톨릭 성직자들에 의해서만 행사될 수 있는 축성위력의 기능들’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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