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로서의 공동체는 전례 행위의 주체이자 거행자이다.

왜냐하면 “전례 행위는 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치의 성사’인 교회, 곧 주교 아래 질서 있게 모인 거룩한 백성인 교회의 예식 거행”이기 때문이다(SC 26).
이미 성경은 눈에 띄게 강조한 어조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생활을 강조하고 있는데, ‘집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그 공동생활은 무엇보다도 기도 안에서, ‘빵을 나누면서’(성찬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열심히 행하는 사랑 안에서 한마음으로 일치단결하는 것을 의미하였다(예를 들면, 사도 2,42-46). Synaxis(집회), Synagoge(회당), Collecta(모임) 그리고 Ekklesia(교회, 참조:
1코린 11-14) 등과 같은 전례 예식에 대한 고대 그리스도교적 이름들은 집합체인 전례 공동체가 그리스도 존재와 거의 동등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따라서 사도들의 모든 작업은,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가 한데 모여 교회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희생 제사에 참여하고 주님의 만찬을 먹도록”(SC 10) 지향하고 있다.
특히 주님의 날에 “그리스도 신자들은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례에 참여하고, 주님이신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과 영광을 기념하며 ⋯⋯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SC 106)
전례가 거의 성직자의 일로만 인식되었던 시대와 신자들의 개인주의가 만연했던 시대에도, 주일과 언명되어 있는 축일들에 “미사에 참석하라는” 교회령은―예식서에도 있듯이(1917년 교회법, can.1248)―전례 공동체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의식을 되살렸다.
이때 공동체의 개별적 구성원들은 “위계와 임무와 실제 참여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전례적 행위들에 관여하게 된다(SC 26; 12장). 전체 교회가 전례의 주체일수록 모든 사람 각자가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
교회는 교계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공동체이다. 따라서 주교나 신부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모든 전례적 집회들의 지도 감독의 권한은 이들에게 귀속되어 있다(Cf. K.Richter, Was ich von der Messe wissen wollte, Freiburg, 1983, pp.21-26).
다른 직무들은 교회법에 따라, 즉 변화 가능한 법에 따라 성직자들에게 유보되었고, 이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뚜렷한 차이점들을 보이기도 한다.
교회법이, 미사의 모든 예식들은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사람들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1917년 교회법, can.1256)고 주장했을 때, 그 주장은 공동체의 행위들, 물론 그 당시 거의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되었던 공동체의 행위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전례라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평신도들은 “선택된 민족, 왕의 사제,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인(1베드 2,9; 2,4-5 참조)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례의 힘으로 그 참여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SC 14)
최소한 평신도들이 비록 유사시에 한정되긴 하지만 세례를 베풀고, 또는 대부모로서 활동하게 되었던 곳에서는 언제나 그들이 전례의 거행자들이라는 사실이 명백했다. 신랑, 신부는 자신들 서로에게 혼인성사를 베풀어 준다는 것이 전승된 신학적 이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모든 평신도는 전례적 예식에 있어서 “누구나 교역자든 신자든 각자 자기 임무를 수행하며 예식의 성격과 전례 규범에 따라 자기에게 딸린 모든 부분을 또 그것만을 하여야 한다.”(SC 28)는 사실이 명백하다. 이런 일은 말씀의 전례에, 또한 사제가 없는 주일 전례에, 그리고 전례적 집회의 주례직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복사, 독서자, 해설자와 성가대원은 진정한 전례 봉사 직무를 수행한다.”(SC 29) 이것은 남녀 구별 없이 적용된다(여자 복사의 문제: K.Richter, Was ich von der Messe wissen wollte, Freivurg, 1983, pp.28-31).
세례 받은 사람들과 견진 성사자들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게 되고, 따라서 하느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또한 인류의 구원에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참조: 1베드 2,4-10; 묵시1,6; 5,9-10; 사도 2,24.47; 로마 12,1; 히브 13,15).
성직이라는 말은 여기서 장로라는 말(presbyteral)과는 달리 사제라는 말(sazerdotal)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 사실은 그리스도 장로(Pyesbyter)에서 유래하며 단어적으로는 연장자, 즉 우리가 오늘날 장로(Presbyter=Priester)라고 칭하는 공동체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모든 세례 받은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이 사제직은 성사들을 받을 때(이것은 수동적인 행위 이상의 어떤 것이다.) 나타나고, 기도와 감사 중에 나타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찬례에 참여시,
즉 신자들이 “신적 희생 제물을 하느님께 바치며, 자기 자신을 그 제물과 함께 봉헌하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인”(참조: LG 11) 성찬례, “사제의 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사제와 하나 되어 흠 없는 제물을 봉헌”(SC 48) 하는 성찬례에의 참여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특별한 예식을 수행하는 신자들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다른 모든 신자들도 전례의 거행자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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