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례 상 식

<전례와 삶> 15. 신앙과 전례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dariaofs 2013. 6. 3. 06:51

전례는 신앙, 또한 신앙적 지식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전례 안에서 신앙과 신학의 내용이, 즉 전 인류사를 관통하고 있는 구원의 신비가 성스러운 표징들 가운데에서 항상 반복되어 현재(現在)하게 되고 활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이 통용되고 있다. 기도의 법이 신앙의 법이다. 이것은 모든 전례적 행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례와 신앙 그리고 신학의 이러한 관계 때문에 신학의 측면에서도 중요하고, 또한 전례의 형식면에서도 중요한 추론들과 요청들이 생겨나게 된다.

 

신학은 증인들의 전승에 의해 기술된 성경에 사변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들에 앞서, 무엇보다도 전례문들과 행위들을 찾아보아야 하고 조사, 연구해야 한다. 이러한 탐구는 본질적인 표징뿐만 아니라 전례 예식의 모든 구조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렇듯 전례는 신학의 중요한 원천이다. 전례는 “교회의 정리된 교사 직분의 중요한 기구(도구)”(비오 11세)이며, 일면 신앙의 표현이자 양분이며, 신앙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참조: SC 33; 59).

 

물론 전례가 교사직 자체는 아니다. 전례는 교과서나 교리 문답서와는 구별된다. 전례문들은 잘못된 직관(관념)에 의해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전례가 교회의 신앙 의식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거나 잘못 표현할 때는 전례문과 예식들(SC 21; 33; 50; 62)은 상황에 따라 변경되어야 한다(SC 33; 59).

 

전례는 본래 사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계속 살게 하는 것이다. 전례는 오히려, 진정한 신앙생활로 이끄는 모든 교리문답의 전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전례는 신자가 그리스도교적 삶에 있어 필수적인 기도를 하도록 도와주면서, 우리가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토대를 놓아준다. “따라서 이 전례 안에서, 여러 여건과 전승의 여하에 따라 지금껏 면밀히 전개되어 온 모든 신학과 인류학의 논점이 발견된다.

 

마침내 전례는 그 공동체적 특성에 힘입어 공동체의 신비를, 그리고 이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강렬하게 체험케 해주고, 성사적 상징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궁극적인 완성을 선포하며 선취하고 있다.”(Irénée-Henri Dalmais)

 

따라서 교회는 언제나 교회의 전례 예식 안에 유입되는 왜곡된 것들로부터 신앙을 지키려는 노력을 중요한 과제로 여겼다. 처음 몇 세기 이래로 전례는 사도적 전통의 탁월한 증거로서 간주되고 있다.

 

바로 로마의 전례는 로마 주교들의 직접적인 책임하에서 생겨났고, 주교들은 전례의 중요한 텍스트들 중의 많은 부분을 직접 저작했다. 이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여전히 우리의 미사 전례서에서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이 전례문들은 그것의 문학․전례적 장르에 맞춰서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 독서(봉독)와 신앙의 진리들이 명시적으로 언급되는 기도문들은 구별되어야 한다.

 

다른 부분들은 오히려 묵상(성찰)에 이바지한다. 서로 다른 여러 시대에 생겨난 전례문들과 예식들은 완전히 상이한 역사적 시기와 장소에 존재한 교회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그로 인해 종종 그것에 대해 설명을 요하는 일이 생기게 되고, 교회 공동체 전례 예식의 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신앙의 깊이를 평가하는 근거가 되며, 그것을 숙지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증거되는 하느님이시다. 그분을 선포하는 것― 모든 전례 예식의 순서들은 바로 이것에 기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