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례 상 식

<전례와 삶> 26. 놀이로서의 전례는?

dariaofs 2013. 6. 20. 12:04

 

인간이, 놀이에서 경계심 없이 서로를 믿는 어린이들처럼, 하느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믿는다면, 삶도 하느님 앞에서 허용된 놀이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술공학과 진보라는 특징이 부각되고 합리성만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현 세상에서는 하느님께로 다가가는 것조차 종종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초월성은 논리적인 형식들을 거절하는 것으로, 오히려 놀라운 것이며 설화적이며 도박과 같은 불확실성을 지닌 것이다.

 

 

 

그런데 전례가 하느님과 우리가 우연히 만난 중심적 장소라고 한다면, 이 전례는 하나의 놀이로서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전례와 놀이는 여러 가지로 공통점을 지닌다.

 

즉 둘 다 자유롭고 무목적적이고, 무언가에 구속받지 않으며 비밀스럽다. 놀이 역시 결국에는 인간의 능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하시는(활동하시는) 하느님’(Hugo Rahner)의 선물로서, 현존의 기쁨에 대한 자유와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전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전례 형식의 길을 미리 마련해 놓은 선구자들 중의 한 사람인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는 이미 1934년에 「놀이로서의 전례」에 관한 그의 논문에서 이러한 사상을 피력하고 있다. “이것(전례)은 놀이이다.

 

즉 목적에 구속받지 않고 발산되는, 그 자체로 충만함을 가지는 삶이며, 바로 순수하게 현존함으로써 의미가 충만해지는 삶인 것이다.

 

사람들이 이것을 차분히 유지한다면, 또 이를 해석하여 교육하고자 무리한 의미들을 부여하여서 이것(전례)을 부자연스럽게 만들지 않는다면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목적을 우선시하여 결정이 이루어지는 주위 환경 속에서, 전례 예식을 놀이로 체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희적 삶에 대한 무능력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전례를 놀이 형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생각의 빗장을 순식간에 더욱 꽉 닫아걸었다. 지극히 형식 논리적인 로마-라틴 전례도 놀이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한다.

 

표징과 동작보다 특히 말씀을 목표로 삼는 전례는, 함께 참여하는 놀이를 “이러한 언어와 놀이 형식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미 처음부터 그럴 자격이 없으면서 강요한 지적인 힘의 놀이”(Matthias Schnegg)로 만든다.

 

모든 놀이에서처럼 전례 예식에서도 법칙들이 필수적이지만, 이것들이 놀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전례에서, 외부로부터 주어진 목적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덕적․교육적인 양상들은 법칙에 위반된다.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지 않는 곳에서 거행되는 전례도 법칙에 위배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례 예식의 거행은, 과르디니에 따르면 “하느님 앞에서 존재하며 사는 것을 의미하며, 주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을 의미하며, ‘어린아이들처럼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실로 도처에서 목적을 지니고 행동하려는 어른의 존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놀이로서의 전례는 동방 교회들의 전례 예식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사실은 이 책 이외에도 M.Schnegg의 책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M.Schnegg, Damit es Freude macht: 68 Spielmodelle für Kindergottesdienste…, Freiburg, 2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