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답송에서는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시편 98,1)이라고 찬미한다.
공동체가 주일에 자신들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집회할 때, 그들의 공통된 행위는 여러 다양한 종류의 실행들 안에서 구체화되며, 그러한 실행들 가운데 성가와 음악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가와 음악의 임무는 모든 형태의 복음 선포 때에 함께 작용하고, 그럼으로써 복음의 선포를 더욱 효과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며,
신앙의 고백과 청원과 감사에 보다 포괄적인 표현을 부여해 주는 것이며, 나아가 성사적 사건을 말씀과 표징하에서 명시하는 것이다.
이때 음악은 지향하는 목적이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새로워진 인간을 묘사하고 구현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때 음악은 단지 음악이 어떻게 활동적인 참여를 일깨우는가에 따라, 또는 음악의 미학적인 혹은 문화적인 가치나 음악의 오랜 존귀성이나 민족성에 따라서 평가될 수 없다.
오직 억압받는 이들이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Kyrie eleison)을 외칠 때, 구원받은 이들이 “알렐루야.”(Halleluja,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외칠 때 이 신앙인들의 음성을 더욱 생생하게 북돋아 줄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평가될 뿐이다.
이것은 특정한 종류의 음악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복음의 약속에 대해서 사람들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모든 음악은 그리스도인들의 전례 예식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전이라고 여겨지는 음악이든, 현대적이라고 여겨지는 음악이든, 대중적인 음악이든 마니아들을 위한 음악이든, 은밀하게 느껴지는 음악이든, 통례적이라고 느껴지는 음악이든,
신앙심을 진작시킨다고 간주되는 음악이든, 다른 곳으로 편향시킨다고 간주되는 음악이든, 어떤 종류의 음악이든 간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회중들에게 미치는 음악의 효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마음으로 거행하는지 또한 진실하게 거행하는지”라는 중요한 관점에 따라서 전례의 예식에 가장 적합한 음악을 선택할 수 있다.
비록 역사가 흐르는 동안에 각 교회들이 제각기 독특한 성가 레퍼토리를 갖게 되기는 했지만 그리스도교 전례 예식에서 특별히 규정된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례 음악에 대한 본질적으로 중요한 특징들은 존재한다. 즉 공동체의 특성과 말씀의 특별한 의미, 음악은 이 둘 다에 기여해야 한다.
집회에서 음악은 일어나는 사건의 표징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음악은 감정과 동질성과 축제와 장엄성의 표현인 것이다.
전례는 그 원천에서부터 찬미이기 때문에 성가는 복음의 표현인 동시에 구원받은 이들의 표현이며, 따라서 성경적․성사적인 말씀과 결부되어 있는 성가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성가를 통해서 말씀의 한계들이 극복될 수가 있다.
공동체가 성가를 통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 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시편 98,4) 하고 외치는 시편 작가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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