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정의철 신부
축복은 준성사(準聖事)에 속하며 따라서 마찬가지로 전례 예식이라고 할 수 있다(참조: 3장).
그런 까닭에 원래의 고유한 전례서는 우리의 손에 있는바, 교회 공동체와 가정 그리고 공공단체의 삶 안에서 주어지는 축복들을 위한 99개 축복의 ‘예식들’을 포함하고 있는 『축복 예식서』〔Benediktionale, 독일어권의 『가톨릭 교구에 대한 학습서』(Studienausgabe für die katholischen Bistümer des deutschen Sprachgebietes, Einsiedeln, Freiburg, 1979)〕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개론」에서는 오늘날의 축복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언급하고 있다.
“교회가 축복을 줄 때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위임하신 권능으로, 또한 주님께서 남아 있는 조력자로서의 교회에게 부여해 주신 주님의 영(靈)의 힘으로 이를 행하는 것이 교회는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에 대해서 하느님을 찬미한다.
교회는 인간들에게, 인간이 만든 것에, 그리고 인간들에게 기여하는 것에 하느님의 축복을 불러내려 준다.”(『축복 예식서』, 제7항)
교회의 축복은 구세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축복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축복은 회상적이고 기념적인 행위로서, 축복의 표현은 성경과 찬미의 내용들에서 발견된다. 동시에 이것은 하느님의 행위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
다양하고 폭넓은 축복을 위해 하느님께 드리는 청원은 다음과 같이 하느님의 행위와 결합된다.
“따라서 하느님의 축복은, 인간이 하느님에 대한 찬미 안에서 이 축복에 화답할 때, 그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이 찬미는 다시금 축복을 성취시킨다.”(『축복 예식서』, 제4항)
이는, 라틴어의 ‘benedictio’와 마찬가지로, 유다교에서 축복의 출처인 찬미를 의미하는 ’berek’이 뜻하는 그리스도적인 축복의 원천에 부합된다.
실제로 축복은, 하느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능력에 대해서 찬미하게 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기도이다.
따라서 기본 구조는 성사들의 기본 구조들과 같은 것이다.
교구 공동체는 역사 안에서 자신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행위에 대해 감사드리고 찬미하며, 지금 이것에서 또한 미래에도 하느님께서 구원의 약속을 주십사 하느님께 청원한다.
공동체는 전체 교회의 청원 기도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오늘날도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원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것은 기본적 신뢰이지만, 기도를 들으신 하느님께서 어쩔 수 없이 특정한 방식들을 통해 구원을 행하시게 되리라는 믿음 또한 미신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축복은, 손을 머리에 올려놓는 행위, 성호를 긋는 행위, 성수를 뿌리는 행위 등과 같은 표징 행위들을 통해 내려진다. 이러한 표징들은 축복자와 축복을 기원하는 자와의 만남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징성과 축복에 대한 동기에 놓여 있는 표징성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상황들과 사물들은, 그것의 특성상, 특별한 방식으로 창조주를 드러내면서 감사와 찬미와 청원의 특별한 동기가 될 때 축복받게 되며,
또한 이러한 것들은, 인간에게 하느님께 종속되어 있음을 특별히 느끼게 해주거나, 위태로움을 드러내 줄 때 축복받게 된다.”(『축복 예식서』, 제14항)
축복은 항상 교회의 행위이지 그저 순전히 개인적인 행위들로 여겨서는 절대 안 된다.
각각의 축복이 교회의 행위인지의 여부는 그 축복이 공적인 교회 규정 안에서 이루어지는지, 전례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의 예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데, 특히 교회로부터 축복할 권한을 받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축복은 교회의 행위임이 분명할 것이다.
일반적인 교회 신분을 근거로 하여 모든 성직자는 세례 받은 사람들과 견진 성사를 받은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다.
그러나 축복이 교회에 더 연관될수록, 성경에 더 다가갈수록, 그리고 교회의 공적인 일에 더 연관될수록, 그 책임은 미사 전례의 집전자에게 부가된다.
공동체의 예식에서 전례 행위들이 분명해야 함은 중요하며, 무엇보다도 특히 성찬례와 연결되어야 함이 매우 중요하다.
축복을 통해 “특히 영적 효력을 교회의 간청으로 얻고 ⋯⋯.”(SC 60) 따라서 축복의 행위는 기도의 행위이며, 기도를 강화시켜 주는 표징을 효과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강화된다.
그러나 축복은 기도보다 더 큰 것이다. 말씀, 표징, 그리고 교회의 관련성, 이 세 개의 요소들은 다음과 같이 바꿔 쓸 수 있는 축복의 본질에 속한다.
“축복은 교회의 표징 행위이며, 이 표징 행위들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인간들에게 내려 주신 선물에 대하여 인간들로부터 찬미 받으시고, 당신의 구원을 인간들에게 내려 주신다.”(Hans Hollerweger)
축복의 전제 조건은 참여자들의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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