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까지만 해도 많이 줄어들었던 성지 순례가 1980년 이후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여러 날이 걸리는 도보 성지 순례까지도 비바람과 추위에 젖는 고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의외로 남자들의 참여가 높고, 청소년들의 참여도 적지 않다. 그 원인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교회에서 드리는 미사에서 받는 너무나도 짧은 체험과는 질적으로 다른 체험을 성지 순례에서는 명백히 얻을 수 있다. 성지 순례에서는 참여자가 능동적인 자세를 요구받게 되고, 교회 안에서는 보기 드문 연대 소속감도 생겨난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온 삶을 짊어진 채 하느님께로 가는 도상에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성지를 순례하는 행위는, 이 삶이 성공해서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도록 하느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청원의 행위이다.
성지 순례의 행위는 고난과 노고를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이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목표 지점들이 하느님 나라 안에서 알게 되는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성인들의 삶의 장소와 활동 장소 도는 하느님을 높이 기리는 장소들을 찾아가서 그곳들을 우리의 기도의 장소로 만드는 것이다.

알맞은 시기에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이다.
종교적인 장소를 성급히 방문하기만 한다고 해서 성지 순례가 아니다. ‘wallen’(방랑하다, 순례하다)는 ’gehen’(걸어가다)라는 동사의 고어(古語)이며, 바로 명상하면서 걸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알맞은 시기와 마음의 안정은 그 자체로서, 명상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서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성지 순례의 장소는 대개 특별한 고해의 장소이다. 이것은, 성지 순례가 우리의 안에서, 우리의 삶 안에서 무언가 변화시켜 준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성지 순례의 장소는 새로운 삶으로 전환하도록, 새로운 삶을 살도록 고무시켜 주는 장소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화해의 장소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의 삶의 운명과 화해하는 장소이다.
올바른 성지 순례는 총체적인, 즉 육체적․정신적 체험이다. 바로 걸어서 하는 성지 순례는 내적인 마음의 준비 일치 그리고 명상을 위한 의외의 도움들을 준비시켜 준다.
그러므로 그리로 가서 그곳에서부터 되돌아오는 도정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그 때문에 성지 순례 행렬을 시작하는 도입부 ‘지점’(Station)인 마음의 일치, 의미의 해석, 동기 부여 과정에서는 가능한 대로 각기 다른 명상을 할 수 있다.
명상하기 적합한 장소는 교향의 교회나, 순례 도중에 있는 교회나, 길에 있는 십자가나 예수님의 형상 앞에서이다.
공동의 식사 시간도, 긴장을 푼 상태에서 함께 있는 것도, 인간적인 마음을 흔들어 깨워서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도 성지 순례에 속한다.
물론 위에 열거한 내용만으로 성지 순례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지 순례가 순례 참여자들의 신앙 의식에 걸맞기 위해서, 또한 전례적인 요소들을 준수하기 위해서 과연 오늘날 성지 순례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널리 행해지고 있는 묵주 기도가 불만족스럽게 여겨지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서로서로 대화를 통해 참여할 수 있는 기도 공동체가 생겨나야 하고, 이러한 대화를 위해서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집단적 실행의 감명이 결코 확성기를 거쳐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
자,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단지 참조 사항일 뿐이고, 아직 실제적인 성지 순례의 구성 제안은 아니다. 이것은 분명히 성지 순례의 동기와 목표 설정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성지 순례에는 확고한 전례적 순서 체계들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즉 전체 교회적인 전례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참조: 3장)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무한히 크다.
따라서 성지 순례의 계획을 구성하고자 하는 교구 공동체는 다른 교구 공동체들의 경험들을 잘 참고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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