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례 상 식

<전례와 삶> 34. 전례의 개혁―반(反)교회적인 것인가?

dariaofs 2013. 7. 1. 13:34

 

작성자 :  
                                         

                                        전례력/ 성경의 독서 배열

 

개신교도들은, 가톨릭의 전례 개혁이 너무나도 교회 일치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재차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공통된 몇몇 것, 이를테면 전례력과 성경의 독서 배열 등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을까?

 

이로써 개혁을 위한 노력의 과정 중에 결코 무시되지 못하고 언제나 숙고되었던 미묘한 문제들 중의 하나가 거론된 것이다.

 

교회 일치의 측면에서, 신앙과 교회의 개혁은 그때그때마다 어느 정도까지 다른 교회들을 고려해야 하는 것일까?


이의가 제기되는 개혁의 두 영역, 즉 전례력과 독서의 배열은 종교 개혁 이전 일치의 시대를 지향하는, 따라서 섣불리 포기할 수 없는 종파 간의 공통점이었다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문제는 최근까지도 개신교도들을 언짢게 했다.

 

 

가톨릭의 입장에서 볼 때, 위에 언급된 두 가지 점의 일치점을 포기해야만 한 것은 분명히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거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대단히 중요한 이유들이 있었다.


전례력의 개혁은, 무엇보다도 전례력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와 관련된 예식을 보다 명백하게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참조: 2장; K.Richter, Was ich vom Kirchenjahr wissen wollte, Freiburg, 1983).


그러기 위해서 두 개의 축일, 즉 부활성탄은 유지하고, 성령 강림 대축일과 주님 공현 대축일을 폐지하여, 이전 세기들에 그러했던 것처럼 확실한 구성으로 소급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성령 강림 대축일은 이제는 단지 부활 시기를 완성하는 종결 부분으로서만 드러나고, 연중 시기 주일들이 그 뒤를 따르게 된다.

 

가톨릭의 전례 개혁은 교회 간 일치된 전례력보다도 새로운 배열에 따른 명백한 전례 구성을 더욱 중시하였다. 하지만 개별적인 사안들의 경우에는, 이를테면 성인 축일 등과 같은 경우에는, 교회 일치를 유념하였다.

 

가톨릭에서는 전례 개혁 이전까지 교회 간 공통적인 축제일, 기념일, 기일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사도 마티아 축일은 2월 24일,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 축일은 7월 2일, 엘리사벳 축일은 11월 19일에 거행되던 로마 교회 성인들의 축일이 개혁 이후에 보통 다른 날에 거행되더라도 어떠한 의미 부여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독서 배열 또한 이와 비슷한 이유로부터 기인한다.


초세기 교회는 독서를 성경의 순서대로 직접 인용했고 최소한 평일에는 날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하였는데, 중세개인 미사의 영향으로 미사 전례서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뒤부터는 이 미사 전례서 안에서 발췌된 특정한 독서들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날에 실행되었다.

 

따라서 주일 미사의 독서에서 더 이상 성경 전체가 봉독되지 않고, 반복되는 독서들이 해마다 선별되어 봉독되었다.

 

전례 개혁으로 인한 가톨릭의 새로운 독서, 복음 배열을 통해 성경의 모든 중요한 부분들이 주일 미사에서는 3년 동안, 평일미사에서는 2년 동안의 순환을 거치며 봉독되게 되었다.

 

개신교도들에게는 다소 유감스러울지 몰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교회 간 일치성은 개혁을 통해서 한층 개선되었으며,

 

가톨릭 내의 개혁 반대자들도 새로운 미사 구성에 대해 “많은 점에서 매우 자유로운 개신교도들을 만족시켜 줄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월등히 향상되었다.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전례서의 보완을 위한 노력이 항상 계속되어 왔다.

 

그 결과로, 대영광송(Gloria), 신앙고백(Credo), 거룩하시다(Sandtus) 그리고 베네딕투스(Benedictus), 하느님의 어린 양(Agnus Dei) 그리고 영광송(Gloria Patti)이라는 미사 진행 순서 정착되었고, 이제 이 배열은 통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개신교의 전례학자들이 항상 표현하고 있듯이, 교회의 일치는 아마도 바로 전례의 개혁을 통해서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