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례 상 식

<전례와 삶> 36. 무엇이 우리를 동방 교회의 전례와 연결시켜 주는가?

dariaofs 2013. 7. 5. 14:08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들이 천 년간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시점에서, 교회공통된 믿음의 예식을 가진다고 보는 시각동방 전례의 독특한 미사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단, 정교회의 예식의 타당성과 정당성이 의심받지 않을 경우에 말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정의(定義)를 묻는 서유럽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서 모스크바의 전 러시아의 총주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러시아 정교회는 하느님의 전례를 거행하는 교회이다.”

 

우리의 전례를 전형적으로 서양적인 방식으로 보다 합리적으로 개혁한 우리들 중의 어떤 이는 어쩌면 상징적인 분위기 안에서 신적인 영광의 초자연적인 광채로 접근시키려는 이러한 전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허나 이러한 전례는 동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창조에 대한 찬양과 성화(聖化)를 증명해주며, 인간에게로 와서 인간을 성스럽게 하고 이러한 천상적인 전례의 거룩한 빛을 통해서 인간을 성화시켜 주는 하느님의 현현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감싸면서 인간의 믿음을 정신적인 아름다움과 기쁨의 환영으로 성화시켜 주는 전례적 환경 안에서 계속되는 삶이다.

 

이러한 예식 안에는 모든 표징의 행위들과 공간의 장식이 존재하게 된다. 대중들과 제단을 표면상으로 구분해주는 성화벽, 즉 성화상들은 경계를 두는 울타리가 아니라 오히려 신비로움 안에 현존하고 있는 천상의 왕국으로 들어서는 상징적인 문이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동방 교회 신자들과 다른 길걸어갔다.


전례에서 비롯되는 모든 개개의 요소들에 대해, 동방인들이 총체적인 삶 전체에 내리는 상징적인 지시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 반면, 서방인들은 언제 무엇이 어떤 방법으로 일어날까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자 했다.


 

따라서 서방인들은 성사에 대한 최소한의 타당성을 얻기 위해 ‘질료’와 ‘형상’의 학설로 다가갔고, 성사의 형식인 말씀을 가시적인 요소보다 우선시 했다. 그럼으로써 점점 더 강조된 것은 말씀이었다.

 

실제적으로 오로지 말씀에다 원래의 성사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종교 개혁을 통해서 이러한 변화는 그 정점에 도달했다.

 

예를 들어 가톨릭 신자들은 성찬례의 형상들의 실체 변화(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함)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통해서 일어나는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무릎 꿇기와 종 울림을 통해서 강조되는 ‘성찬 제정과 축성문’인 ‘실체 변화의 말씀들’통해서이다.


이 부분에서 동방 교인들은 그 아무것도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실체 변화는 일어난다.

 

하지만 전 과정, 즉 성령을 불러내는 것에 중점을 둔 성령 청원 기도(축성 기원)가 실체 변화 과정에 속한다. 따라서 최후의 만찬을 그리는 서사적인 독서도 이러한 변화 과정에 속한다.

 

 

서방인들이 형상과 상징에 대한 의미를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사실, 따라서 성사로서의 일반적인 이해라는 중요한 접근 역시 상실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차원으로, 동방 전례에 대한 이해는 우리 자신의 전례 이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여러 그리스도 교회들의 차이를 분리라는 성격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서서히 이러한 차이가 서로의 보완과 교정이라는 본질적인 중요한 측면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다.

 

동방과 서방의 전례 개념들의 역사는 이 양자가 상호 간에 얼마나 많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서로 보완할 수 있고 얼마나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전례 개혁은 이미 이것을 충분히 반영했다.


일례로 수천 년 동안 한 가지의 감사 기도로 제한되어 오던 것을 다수의 감사 기도의 형식들로 이행하도록 한 것은 동방의 관습을 받아들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례 개혁을 통해 마련된 가톨릭교회의 전례 가운데 특히 감사 기도에서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참조: 6장)성령의 내려오심에 대한 청원(참조: 8장)이 더욱 강조되었는데, 이는 수백 년 동안 세속적인 행위에 보다 관심을 두어 온 서방인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동방적인 요소들이다.


이렇게 정체 교회의 두 번째 감사 기도는 동방적인 전통으로 되돌아간다.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오실 때까지’라는 재림의 모티브를 지닌 성찬 제정과 축성문과 연결되는 대중들의 동의(환호), “신앙의 신비여” 역시 동방의 전통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예전에는 영성체 예식 때 사제들만 바쳤던 ‘주님의 기도’는 이제 동방에서처럼 모든 회중들의 공통적인 영성체 준비 기도가 되었다. 전례 개혁의 뼈대가 되는 기본적인 요소들은 동방에서 들어온 것이다.

 

즉 이것은 지나치게 합리성만을 고수하는, 교권주의적인 경직된 전례 개념에서 탈피하여 전체 교회 공동체의 예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주일의 파스카 예식에 중심적인 위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전례에서 각국의 모국어사용하도록 한 중대한 결정도 동방 교회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정교회에서 성혈을 영함은 예수님에 의해 주어진 충만한 표징으로 자명한 것이랄 수 있는데, 서방 교회에서도 이를 다시 받아들여 성체를 성혈에 찍어 영하는 형식으로 가능해졌다.

 

이러한 온 전통을 지닌 동방 교회의 전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자극을 주었고, 이로 인해 우리에게 명백한 청원 기도들도 처음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종부 성사’에서 ‘병자 성사’로 귀환할 때도 서방의 이러한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잘못된 전개에 대한 동방의 강력한 항의가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사고의 전환 과정에서, 동방적인 유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예들을 적지 않게 열거할 수 있다. 이렇게 동방과 서방 교회 사이에는 상호 간의 대화가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교황 비오 9세(Pius Ⅸ)가 1847년에 동방의 전례를 단지 참아 줄 만한 것으로서 라틴 전례보다 하위이며 2급의 것으로 품위를 저하시킨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것은 엄청난 발전이다.

 

동방과 서방의 전례적 보완은 하느님의 영(靈)이 언제나 교회 안에 완전한 영으로 활동하시는 것에 대한 표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