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전례서들은 교회 일치적인 관점에서도 검토되었다.
전례서들을 수집하여 각각의 교회가 못마땅하게 여길 만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배제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특별히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에 제작되어, 1970년까지 400년 동안 통용되어 오던 미사 전례서(비오 5세의 『미사 전례서』)는 종교개혁과 같은 도전에 대비하도록 편찬되었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 오늘날의 미사 전례서(바오로 6세의 『미사 전례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심화된 이해를 고취시키게끔 제작되었다.
이 미사 전례서를 통해, 종교 개혁 이전 시대의 모든 기도문들은 거의 변경이 필요치 않으며, 종교 개혁 이후에 가톨릭에서 새로 만들어진 많은 기도문들도 마찬가지라는 결과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여타 다른 교회 신자들에게 마뜩지 않게 여겨질 수 있었던 성금요일의 보편 지향 기도는 변경되었다.
이 기도는 8세기부터 시행되어 온 매우 오래된 기도로 ‘이단자들과 신앙을 등진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이 기도는, 악마의 속임수에 의해 기만당한 사람들이 이단적인 그릇됨을 버리고 잘못된 양심을 성찰하여 진리의 일치로 돌아오게 하려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 의지를 상기시켜 준다.
1955년 성주간의 개혁 시에 이 기도문이 비록 현존하긴 했지만, 그때는 ‘교회의 일치를 위한’ 기도라고 불렸다.
미사 전례서(바오로 6세의 『미사 전례서』)에서 이 기도는 이제 ‘보편 지향 기도’(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기도)로 지칭되며,
이단자들과 이교자들을 언급하는 대신에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공통점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정점에 두고 있다.
교회로의 회귀 대신에 진리의 살아 있는 실현(참조: 에페 4,15)을 기도한다.
이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 교회의 마음을 일치시켜 주고 그 마음을 유지시켜 줄 것이다.
이 기도는, 하느님께서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시고, 흩어져 있는 것을 모으시고(요한 11,52) 일치를 유지시키실 수 있다는 언명들이 표현된 된 기도서에서 따온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례를 통해서 거룩해진 사람들을 믿음 가운데 지켜 주시고, 사랑의 띠를 통해서 이들을 결속시켜 주실 것이다(콜로 3,14).

교회 분열의 종결을 위한 봉헌 미사는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종교 개혁에 반대하여 ‘혐오스러운 이단’의 해악에 대항하고자 지시하였다.
미사 전례서(바오로 6세의 『미사 전례서』)는 이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기도”로 변경하였으며, 이는 세 개의 다른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형식들은 비록 전체적으로는 모든 그리스도 교회 정신에 따르는 하였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보다 뒤떨어진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이 점에 대해 다른 교회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과 은총 안에서 성스러운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활동하시는 성령 안에서 참된 결합을 지니게 된다.”고들 말한다(참조: LG 15).
아직도 모든 그리스도교의 일치된 정신을 위해 긍정적인 많은 것들이 미사 기도문과 성찬의 전례 기도문에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각 교회의 전례는 정말 더 이상 전체 그리스도 교회의 믿음으로서 표현될 수 없다. 가톨릭의 입장에서 볼 때 성찬례가 교회 일치를 완성할 핵심이지만, 이보다 우선하여 현실적인 일치가 보여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일치를 위한 전례의 수많은 청원들에 대한 수용은 교황, 주교들, 그에 따르는 하나 된 교회를 전제로 하며, 특히 지금 여기에 모인 교구 공동체를 그 대상으로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2월 16일에 카라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아직도, 다 함께 하나 되어 한 개의 빵과 하나의 잔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이러한 슬픔이 우리가 행동하도록 우리를 자극시키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여, 우리는 이 일치의 성찬에 참여하면서, 모든 교회의 재결합을 향한 깊은 열망을 갖기로 합시다. ⋯⋯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 받은 모든 사람들의 일치를 위해서 반드시 꼭 기도하고 활동해야 하는 필수불가결성에 대해 가슴 깊이 확신하기로 합시다.”
위와 같은 교황의 강론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우리는 전례 예식을 통한 교회 일치에 더욱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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