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7월 29일 다해 연중 제17주간 월요일(성녀 마르타 기념일)

dariaofs 2013. 7. 29. 09:12

(요한 11,19-27)

 

<죽음>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예수님께서는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셨고(요한 11,6),

예수님께서 베타니아 마을에 도착하셨을 때,

라자로는 무덤에 묻힌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있었습니다(요한 11,17).

 

라자로의 동생 마르타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21)."

이 말은, '주님께서 여기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늦게 오셨기 때문에)

제 오빠가 죽었습니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마르타의 말에 슬픔과 안타까움이 들어 있긴 하지만

예수님을 비난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라자로를 죽인 것이 아닙니다.)

 

마르타의 말은 이렇게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병든 이들을 살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비록 제 오빠는 죽었지만..."

그래서 마르타의 말은, 자기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어도,

그래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2)."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예수님과 마르타의 대화가 약간 동문서답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부활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죽은 라자로를 살리실 수 있음을 암시하시는데,

마르타는 종말의 부활을 믿는다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마르타는 죽은 라자로가 '지금'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요한 11,39)."

라는 마르타의 말은,

죽은 라자로가 지금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르타의 믿음이 부족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이 생을 마치고 죽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권한에 속한 일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하느님께서 '죽음'이라는 것에게 사람을 빼앗기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죽음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믿음입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도 믿음이 부족한 모습은 아닙니다.

믿더라도 슬픈 건 슬픈 것이고, 아픈 건 아픈 것입니다.

 

어떻든 마르타가 사랑하는 오빠의 죽음을 겪으면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을 주님, 메시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고백한 것은 중요합니다.

이 신앙고백은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마태 16,16)과 동등한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그를 반석으로 삼으셨고,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셨고,

매고 푸는 권한도 주셨습니다(마태 16,18-19).

그러면 마르타에게는 무엇을 주셨을까?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어떤 권한이나 직책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라자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요한 11,43-44).

이 일이 마르타의 믿음에 대한 보상은 아니지만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마르타의 입장에서는

큰 은총의 선물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 11,40)"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병석에 누워 있는 사랑하는 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를 기도하고 있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부활은 너무 먼 세상의 일처럼 느껴지는데,

죽음은 언제나 항상 생생한 눈앞의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현실이고, 운명입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또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는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숙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르타의 믿음은 우리에게 중요한 모범이 됩니다.

 

(라자로가 다시 살아난 일은 그의 이승의 수명이 조금 더 연장된 일일 뿐입니다.

그 뒤에 라자로는 복음을 전하는 활동을 하면서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라자로가 그 사건 전에도, 또 후에도 평생 충실한 신앙인으로 살다가

나중에 다시 진짜로 죽은 다음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격을 얻게 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