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2,13-21)
<탐욕>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3-15)
어떤 사람이 유산을 독차지하고 동생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동생이 예수님께 와서 하소연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유산 분배 문제에 개입하기를 거절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그런 세속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죽은 이들의 일은 죽은 이들이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루카 9,60).
세속의 일은 세속의 법대로 처리하면 됩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동생이 아니라 형을 겨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유산을 나누어 받기를 바라는 것이 탐욕이 아니라
나누어 주지 않고 혼자 차지하는 것이 탐욕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라는 말씀은,
'사람의 생명은 재산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한에 속해 있다.' 라는 뜻인데,
돈을 믿지 말고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라는 말씀은
하느님보다 돈을 더 믿는 부자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난해도 돈만 밝히면 탐욕스러운 부자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더 좋은 병원에서 더 좋은 치료를 받아서 더 건강하게 살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가난해서 약도 못 사고 치료도 못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인간 세상의 현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의 생명은
돈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한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바로 그 문제에 관해서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19-20)"
어리석은 부자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으로 즐길 생각을 했다는 것은
자기가 최소한 '여러 해'를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단 하루'의 여유도 주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처지입니다.
모든 것을 손에 쥔 절대 권력자들도
죽음 앞에서는 하루살이와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러니 인간들은 의학이 조금 더 발달했고,
평균 수명이 조금 더 늘어났다고 해서
하느님 앞에서 교만해지면 안 됩니다.
평균 수명은 평균 수명일 뿐이고, 그게 자기의 수명은 아닙니다.
우리는 조금 더 오래 사는 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말은, 지금 어떤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의 경우에,
하느님께 다 맡기고 치료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게 사는 것'이
진짜로 잘사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루카 12,21).
또 재산을 땅이 아니라 하늘에 쌓으라고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루카 12,33)."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는 방법은,
또는 보물을 하늘에 쌓는 방법은 '믿음, 정의, 선,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래도 가난에 쪼들리고 궁상맞게 사는 것보다는
좀 더 품위 있고 여유 있게 살면서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인데,
'혼자서만' 그렇게 살겠다고 하면 그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이기심과 탐욕은 늘 짝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함께'
가난과 궁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함께 배부르든지, 함께 굶든지...)
품위 있고 여유 있게 자기가 먼저 배불리 먹고 나서,
그 다음에 조금 남은 음식을 굶주리는 사람에게 주면서 생색내는 것은
위선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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