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0,25-37)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라고 묻고 있는데,
이 질문에는 사람들을 '이웃'과 '이웃이 아닌 사람'으로 분류해서
이웃에게만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율법학자의 질문은
"이웃이 아닌 사람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에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
라고 반문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누가 이웃인지 묻지 말고,
네가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이 다 이웃이다. 이웃이 아닌 사람은 없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35)." 라고 하신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수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도 이웃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다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흔히 '지금 옆에 있는 사람부터 사랑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데, 이 말 자체는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사람부터'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으로 그칠 때가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경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루카 6,32)."
'죄인들도' 그렇게 한다는 말씀은,
'그런 식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죄다.' 라는 뜻입니다.
사랑에는 울타리가 없어야 합니다.
또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말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5)"
만일에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당한 사람에게
'힘을 내라, 용기를 잃지 마라.' 라는 말만 하고 갔다면,
그냥 지나간 사제와 레위인과 다를 것 없는 사람이 됩니다.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당한 사람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고 되어 있는데(루카 10,33),
가엾은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가엾은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우리가 바치는 기도에 대해서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일미사 때의 보편 지향 기도를 보면,
세계 평화, 민족 통일, 교회, 가정, 이웃 등... 온갖 지향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기도만 하고 일은 하느님한테 다 떠넘긴다면,
그것을 올바른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실천이 따르지 않는 기도는 죽은 기도(빈말)입니다(마태 6,7).
예수님께서 율법학자에게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가서 행동으로 실천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이 강도당한 사람에게 베푼 사랑만 생각할 때가 많은데,
한 가지 사랑을 더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강도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치료하고,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강도 사건을 경찰에 신고해서 강도들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처벌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고,
그 강도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의 범죄를 막는 것도 사랑입니다(마태 18,15).
강도를 당한 사람을 도와주기만 하고 강도들의 악행을 내버려 두다가
어디선가 또 피해자가 생기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서 새로운 피해자를 찾아가서 도와주고...
그런 식으로 무한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자비'는 '정의'와 함께 실현되어야 합니다.
정의 없이 자비만 실천하다가는 사랑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든 사람들을 꾸짖으셨고,
그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루카 19,45-46).
그 일도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람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신 일은 그들을 '제거'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회개시켜서 다시 받아들이기 위한 일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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