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1,37-41)
에스파냐 카스티야(Castilla)의 아빌라에서 태어난 성녀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는 알론소 산체스 데 세페다와 그의 두 번째 부인 베아트릭스 다빌라 이 아우마다의 딸이다. 성녀 테레사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녀들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1532년에 아빌라에 있던 수녀원을 떠나야 했다.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갈망해오던 그녀는 1536년에 아빌라에서 카르멜 수녀가 되어 다음 해에 서약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1538년에 수녀원을 떠났다가 1540년에 다시 들어갔다.
그녀는 1555년과 1556년 사이에 환시를 보았고 신비스런 음성을 들었는데, 알칸타라(Alcantara)의 성 베드로(Petrus, 10월 19일)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을 때까지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성 베드로 신부는 그 모든 환시가 진실한 것임을 그녀에게 확신시켰다.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는 그 당시의 다소 느긋한 수도생활보다 더욱 엄격한 봉쇄 생활을 원하는 수녀들을 위하여 아빌라에 성 요셉 수도원을 세웠다(1562년). 1567년 카르멜의 총장인 루베오 신부는 성 요셉 수도원과 같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다른 수도원을 세우도록 그녀에게 허락하였으므로, 메디노 델 캄포에 제2의 수도원을 세울 때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2월 14일)이란 젊은 수도자를 만났으며, 1568년에는 두루엘로에 남자를 위한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다(이것이 최초의 개혁 카르멜 수도원이다).
성녀 테레사는 에스파냐 전역을 다니면서 카르멜의 개혁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1575년의 총회는 그녀의 개혁 그룹을 제한하였다. 1580년까지 카르멜 내부의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투쟁은 격심하였다. 이윽고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는 맨발의 개혁파를 독립 관구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테레사는 수많은 편지와 책을 지었는데, 이 모두는 영성 문학의 고전이 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다. "자서전"(1565), "완덕의 길"(1573), "영혼의 성"(1577) 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신비가 중의 한 명인 성녀 테레사는 지적이고 빈틈없는 사람이었으며, 매력적이나 깊은 영성을 지녔으므로 차원 높은 관상생활과 더불어 수준 높은 활동생활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던 위대한 성녀이다. 그녀는 에스파냐의 알바 데 토르메스에서 선종하였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에 의하여 1622년에 시성되었다. 그리고 1970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교회의 여성으로는 최초로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그녀는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불린다.
<바리사이들>
어떤 바리사이가 예수님을 초대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루카 11,37-38).
당시에는 식사 전에 아주 세세하게 규정된 정결 예식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다는 말은
그 정결 예식을 생략하고 바로 식사를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정결 예식은 부정을 씻어내기 위한 일인데,
예수님은 부정 자체가 없으신 분이니까 정결 예식을 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는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비판하시는 계기가 됩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일부러 손 씻는 예식을 생략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39-41)."
속은 깨끗하지 않은데 겉만 깨끗한 것, 그것이 바로 '위선'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바리사이들을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들로 생각했고,
충실한 신앙생활의 모범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을 위선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마태 6,5)."
그들의 신앙생활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것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라고 하시는데, 사실 그들은 자선을 베푸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선도 위선이었습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마태 6,2)."
바리사이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를 내놓았다고 해도,
그것은 진심이 아니라 '연기'였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이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고 비판하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라는 말씀은,
도둑질한 돈으로 불우이웃 돕기 헌금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탐욕과 사악을 버리라는 뜻이고(처음부터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뜻이고)
자선으로(사랑으로) 속을 채우라는 가르침입니다.
자기 속이 깨끗해야(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야)
남에게 깨끗한 것을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이기심은 그 자신을 더럽히는 부정한 힘이고,
이타심(아가페 ㅡ 사랑)은 그 자신을 깨끗하게 만드는 정결한 힘입니다.
말로는 백성들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공금 횡령, 뇌물 수수 등을 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는 정치인들은 모두
바리사이들 같은 위선자들입니다.
입으로는 하느님과 사람을 섬긴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종교인들도 바리사이들입니다.
사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것은 모두 위선입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입니다.
희생이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것이고,
자기의 것을 기꺼이 내놓는 것이고,
어떤 대가도 보상도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둑질한 돈을 내놓는 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당연히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도둑질한 것에 대한 죗값까지 치러야 합니다.
이기심과 욕심과 욕망을 버리는 것도 희생이 아닙니다.
성덕을 쌓으려면 당연히 버려야 하고,
그런 것들을 버리는 것 이상의 덕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의 이 내용과 관련해서 바로 떠오르는 장면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루카 21,1-4)' 장면입니다.
부자들은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기 때문에
그들이 희생한 것은 적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에 굉장히 큰 희생을 했습니다.
바로 그 희생의 차이가 사랑의 차이입니다.
크게 희생했다면 큰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물론 그 부자들이 착한 사람들이라면, 그래서 선의로 헌금을 했다면,
그들도 어느 정도는 (자기들 나름대로는) 사랑을 실천한 것이 되지만,
그래도 가난한 과부보다는 작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그 부자들이
'탐욕과 사악'으로 부정하게 재산을 모은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모두 내놓아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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