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3년 10월 13일 다해 연중 제28주일

dariaofs 2013. 10. 13. 00:30

 

                                                               (루카 17,11-19)

 

 

<믿음, 구원>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루카 17,14-16)."

병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제들에게 보냅니다(루카 17,14).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병이 낫게 되었는데,

그 치유는 분명히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입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만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복음서 저자는 다른 아홉 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사제에게 가는 동안에 치유되었기 때문에

그 아홉 명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께서 사제에게 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명령대로 그냥 사제에게 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래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쉬울 때에는 도와달라고 간청하지만

아쉬운 것이 없으면(또는 문제가 해결되면) 차갑게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여간에 아홉 명은 그냥 가버렸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치유가 취소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베푸신 은총과 자비를 취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몸의 치유를 원했고,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되돌아온 사람은 다른 아홉 명이 받지 못한 은총을 더 받았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이 말씀에서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을 뜻합니다.

그 사람은 몸만 치유된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을 뜻합니다.

다른 아홉 명도 예수님을 믿었으니까 자기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한 것인데,

그들은 감사할 줄 몰랐고, 그리고 몸의 치유로만 만족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얻을 수 있었던 더 큰 은총을 얻지 못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에서

'네 믿음'이라는 말이 문장의 주어로 되어 있지만,

구원의 주체가 그 병자의 믿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구원의 주체는 예수님이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을 뿐입니다.

믿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자비이고 은총입니다.

믿음은 그 자비와 은총에 대한 응답입니다.)

 

되돌아온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유대인들을 꾸짖기 위한 이야기로도 생각됩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바랐던 것은 현세적인 복이었습니다.

 

빵의 기적을 체험한 뒤에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일이(요한 6,15) 좋은 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몸을 고쳐 달라고, 또 마귀를 쫓아내 달라고

예수님께 몰려들었지만(루카 4,40) 그들이 원한 것은 거기까지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던 것을 얻은 다음에는 예수님에게서 떠나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직접 보면서도 믿지 않았고,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린다고 비방하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루카 11,16).

 

(그런데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와 그 여자의 마을 사람들은

원래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예수님께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마을에서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떻든 다른 아홉 명의 병자도

몸이 치유되긴 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 일은 예수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아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진짜로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그 아홉 명이 그것으로 영영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만일에 그들이 나중에라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에게로 되돌아갔다면

그들도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번 가버린 다음에 예수님을 다시 찾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끝나버렸을 것이고...

그래서 이 이야기는 우리를 위해서 미완성으로 남겨둔 이야기입니다.)

 

지금 몸이 아파서 치유의 은총을 청하는 것은 (또는 다른 뭔가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 기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좋은 일입니다.

간절하게 기도하고 노력해서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계속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요한 5,14)."

 

(그러나 만일에, 매사에 감사해야 한다면서 병에 걸린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치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태도는 주님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고,

매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잘못된 일들은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병에 걸렸다면 치료를 해야 하고, 장애는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독재 정치, 사회 불의, 범죄자의 악행... 등은 막아야 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아무거나 다 주님의 뜻이라고 하고, 아무거나 다 감사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사탄의 장난도 주님의 뜻으로 착각하고,

사탄이 한 일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는 어리석은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매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은총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기만 하는 패배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