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사순 제1주일) 마태 4,1-11
얼마 전, 본당에서 구들 흙집 짓기 교육이 있었습니다. 봄이 다가오는 냄새를 맡으며 매일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저녁 미사 시간에 맞춰서 본당으로 돌아오고, 아침 미사를 봉헌하고 다시 교육장으로 찾아갔습니다.
보름 전 남성 캠프를 가다가 휴게소에서 구입한 ‘깔깔이’를 입은 채 서툰 솜씨로 연장을 만지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지붕에 올라가 망치질을 하였습니다.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을 하던 중에 손전화가 울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 정확하게는 받지 못한 전화를 확인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어쨌든 익숙한 이름이 액정 안에 보여서 기쁘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유혹자의 목소리를 이겨내기는 참 힘듭니다. 더군다나 당위성을 지니고 접근하는 유혹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서 제가 지금 이런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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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교 | ||
저는 강론을 쓰지 않습니다. 서품 2년차까지는 강론 원고를 썼습니다. 그리고 강론을 다음에 사용할 수 있는 자료로 남겨두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론은 예언직의 실천인데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내가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강론 원고라는 틀 속에 성령의 자유로운 선포를 막아버리는 것은 아닌가?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어보자. 믿고 시도해보자.’
그래서 이후부터 강론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의 사적인 생각을 강제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복음의 말씀을 반추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 시간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골방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골방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제 하루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매일 유혹을 당합니다. 그런데 유혹을 당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은 유혹을 당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려는 욕구를 드러냅니다. 결핍에 대한 보상의 욕구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충만함의 상태에서 유혹자의 소리는 단순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내게 결핍된 부분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유혹자의 소리는 존재를 흔듭니다.
그래서 사람은 유혹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유혹을 끌어들입니다.
내가 무엇인가에 유혹을 당하고 있다면, 사실 유혹을 끌어들이는 것이지만, 내 안에 그 부분이 결핍되었거나 채워지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유혹은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원입니다.
유혹에 빠져서 나쁜 것이 아닙니다. 유혹을 통해서 무엇인가가 채워지기를 기대하는 나의 생각이 건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유혹과 유혹에 빠졌을 때의 감정을 구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유혹은 있는 그것입니다. 없애려고 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혹에 빠졌을 때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고 따라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선택과 다른 선택을 통해서 새로운 상태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유혹자의 존재를 인정하십니다. 그 존재를 부인하거나 거부하시지 않습니다. 유혹자는 지금 여기에 실재합니다. 다만 유혹자의 유혹을 대하시는 주님의 상태가 유혹자를 이겨냅니다.
유혹을 받아들였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은 짜릿합니다. 그러나 그 짜릿한 쾌감 뒤에 발생하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불안’입니다. 삶의 상태를 흔드는 불안이 발생합니다. 불안을 느끼는 삶, 불행합니다.
우리는 유혹자를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유혹을 이겨내면 유혹자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유혹자가 많아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을 끌어들이는 내가 갈등을 만들어 냅니다. 유혹을 통해서 결핍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갈등을 만듭니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했던 갈등의 대부분은 유혹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인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이 문제다. 저 사람만 없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다.” 사실일까요? 유혹에 빠진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나’입니다.
임상교 신부 (대건 안드레아)
대전교구 청양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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