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의 성 요한(Joannes de Deo)은 1495년 3월 8일 포르투갈 몬테모르오노보(Monte-Mor O Novo)에서 태어났다.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8세 때에 한 순례자를 따라 가출하였다. 순례자를 따라 에스파냐까지 간 그는 오로페사(Oropesa)라는 도시에 사는 마요랄(Mayoral)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마요랄의 집에서 글공부와 허드렛일을 익혀 가면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학교 공부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가축을 돌보는 일을 하며 양치기 목동으로서 28세까지 그곳에서 생활하였다.
프랑스와 에스파냐 사이에 국경 분쟁이 발생하자 그는 오로페사 백작의 군대에 편입되어 에스파냐를 방어하기 위해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 시기에 요한은 다른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방종한 생활을 했으며, 자신이 담당하는 전리품이 도난당하는 일이 발생해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군대에서 추방당했다.
그 후 예전처럼 양치기 목동 생활을 하던 그는 다시 터키 제국의 침공으로부터 비엔(Vienne)을 방어하고 있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군대에 지원하였다. 전쟁이 승리로 끝나고 군대가 해체되자 요한의 군대 생활도 끝났다.
그 후 그는 감사기도를 드리기 위해 에스파냐의 북서부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 새로운 장을 여는 출발점으로 그는 많은 시간을 묵상과 기도로 보냈다.
그러던 중 그는 포르투갈의 영토로서 전략적인 요새였던 북아프리카의 수타 지역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떠났으며 그곳에서 잠시 생활하였다. 수타에서 돌아온 후 요한은 그라나다(Granada)의 엘비라(Elvira) 성문 옆에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책과 십자가, 성물 등을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539년 1월 20일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축일에 성 요한은 아빌라의 성 요한(5월 10일)의 강론에 큰 감명을 받아 회심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런 그의 생활을 본 주변 사람들은 그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여겨 왕립 병원으로 데리고 갔고, 거기서 그는 모진 시련을 겪었다.
성 요한은 퇴원한 후 과달루페의 성모 마리아 성지를 순례하고 그곳에서 병원 운영과 병자 간호에 필요한 기본적인 일들을 배웠다. 그라나다로 다시 돌아온 성 요한은 그라나다의 주교와 베네가스(Venegas)라는 은인의 도움으로 1539년 12월말에 루체나(Lucena) 가도에 처음으로 '자선의 집'을 개원하였다.
그는 환자들이 따뜻하고 깨끗한 생활을 영위하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지내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의 활동이 가끔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길거리의 창녀와 부랑자들을 보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540년에 에스파냐 국왕의 고문이며 그라나다를 관할하고 있던 투이(Tuy)의 주교 라미레스(Ramirez)는 성 요한을 만찬에 초대해서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천주의 요한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하사하였다. 그의 높은 성덕과 헌신 덕택으로 수많은 재산가와 왕족들이 그의 사업을 위하여 많은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성 요한은 심장 울혈증과 관절염, 안구 이상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으나 쉬지 않고 일하였다. 하지만 결국 1550년 3월 8일 자신이 태어난 날,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선종하였다.
천주의 성 요한은 1630년 9월 21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690년 10월 16일 교황 알렉산데르 8세(Alexander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1886년 5월 27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그를 병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으며, 1930년 8월 28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모든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천주의 성 요한은 살아 있을 때 직접 수도회를 설립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 의해서 후에 수도회가 설립되었다. 교황 비오 5세는 그를 일컬어 “교회의 뜨락을 온전히 꾸미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한 송이 꽃”이라고 하였다.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설립된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는 1572년 1월 1일 교황 비오 5세의 승인을 받아 교황청 직속 수도회로 설립되었다.
강론 : (루카 5,27ㄴ-32)
<너희는 의인이냐?>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 바리사이들이 비난합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루카 5,30)"
이 말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보니
당신들도 죄인이다." 라는 뜻입니다.
또 이 말에는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 5,31-32)."
이 말씀은,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이들을 고쳐 주기 위해서이고, 회개시키기 위해서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은 죄인이 아니다." 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 사람들이 죄인인 것은 맞다. 그래서 만난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적도 많습니다.
그 일도 역시 그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만나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 앞에서는 바리사이냐, 세리냐, 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세리는 회개하지 않는 바리사이와 다르지 않고,
회개하는 바리사이는 회개하는 세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개'이지 직업이나 신분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회개해야 할 죄인이고, 모두가 다 구원 받아야 할 인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세리들을 옹호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너희는 정말로 의인이냐? 너희는 건강하냐?" 라는 질문입니다.
이제 이 질문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너희는 지금 의인인가?"
(이 질문에 "나는 의인이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짜 의인이 아니라 위선자입니다.)
'몸'에 관해서는 실제로 완벽하게 건강해서
의사를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영혼의 구원 문제에 관해서는
예수님을 만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따라서 예수님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의인이라고 해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몸의 병은 스스로 치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들을 만나신 것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였고,
세리들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만날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물론 그들도 메시아를 기다리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구원을 가져다 줄 메시아가 아니라
정치적인 독립을 가져다 줄 메시아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은 많이 나오는데
세리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리들을 편애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에는 그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마태 18,17)."
이 말씀들에서 '세리'는 '죄인'과 동의어입니다.
그 당시의 세리들은 죄인들이라고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었고,
실제로 대부분의 세리들이 죄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세리들을 꾸짖는 말씀을 별로 하지 않으신 것은
그들은 이미 거의 대부분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반대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자주 꾸짖으신 것은
그들이 자신들은 의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러면서 '회개'를 남의 일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세리들을 만나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일만 사랑인 것이 아니라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꾸짖으신 일도 사랑입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꾸짖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고,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과 자비와 구원은 받으려고 하는 사람만 받을 수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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