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3월 9일 가해 사순 제1주일

dariaofs 2014. 3. 9. 00:30

 

                                                                                     (마태 4.1-11)

 

 

“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은 처음에 하느님께 순명하면서 살다가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하느님과 같아지려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그로인해 죄가 들어오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류가 저지른 이 교만의 죄는 첫 사람만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를 괴롭히고 놓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죄에 빠져드는 부족함 때문에 스스로가 비참하기도 하지만 예수님도 그러한 유혹에 빠져드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사순 제1주일. 40일이라는 사순의 의미를 생각할 때 우리가 만나는 첫 번째 복음은 바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40일의 광야의 유혹입니다.

 

사십일을 단식하신 예수님께 유혹자가 다가와서 말합니다. 사실 사십일 후에 온 것이 아니라 사십일 내내 그랬을 것입니다. 자, 배고프지 않느냐. 배고프면 빵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봐라 너는 이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있지 않느냐? 이것은 개인적인 유혹입니다. 내 개인적인 육신에 대한 약함으로 인해서 오는 유혹입니다. 재의 수요일 하루 한 끼 단식하는 것도 어려운 저에게는 큰 유혹일 것입니다.

 

이 개인적인 유혹은 결심과 인내로 버티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유혹이 단순히 배고프니 배를 채우라는 유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 배고프고 힘들어하는 만큼 고통 받는 영혼들이 이 세상이 무수히 많다. 하루에도 수 십 명씩 기아와 가난으로 아이들이 쓰러지고 세상은 모른 척한다.

 

구원자라는 네가 나서서 이들을 구원해야 하지 않겠느냐? 가서 이 돌들로 빵을 만들어 나눠주어라.

 

솔깃한 유혹입니다. 정말로 구원자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나가서 사람들을 구원해주어라. 이 유혹은 너는 하느님이니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고 너의 능력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전한 사람이 아니시면, 고통 받고 돌아가시지 않으시면 우리가 이 자리에서 미사를 드리는 의미는 전부 사라지게 됩니다. 여하튼 예수님은 유혹자에게 인간적인 유혹과 신적인 유혹을 받으십니다.

 

줄줄이 나오는 유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같이 능력을 드러내길 요구하는 유혹입니다.

 

어찌하여 하느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하느님께서는 하늘 위에 높이 계셔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시고 계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 그만 두십시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 이렇게 악마가 와서 유혹하면 유혹을 피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볼 때 이 유혹자는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내면 안에서 엄청난 갈등과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옛날 사람이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처.럼.’ 능력을 드러내고 싶다는 내면의 유혹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악마를 현명하게 물리치십니다. 그것도 당신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철저히 하느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물리치십니다. 육화의 신비 안에 겸손을 채워 넣으신 예수님에게서 구원의 문이 열립니다.

 

이로써 한 사람이 지은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뒤집어 엎으십니다.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들어온 것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은총으로 바뀌어 갑니다.

 

은총의 사순시기입니다. 이번 주간은 교만과 겸손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생활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기에 앞서 머리에 얹은 재를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회개하는 한 주가 되었으면 합니다.

 

 

유영근 야고보 신부(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 본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