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3월 17일 가해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성 파트리치오 주교)

dariaofs 2014. 3. 17. 11:10

 

 

로마제국의 브리튼(현재의 영국) 식민지에서 지방의회 의원이었던 귀족 칼푸르니우스(Calpurnius)와 콘체사(Concessa)의 아들로 태어난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또는 파트리치오)는 389년경 스코틀랜드 던바턴(Dunbarton) 근처 킬패트릭(Kilpatrick)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16세 때에 아일랜드 해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 북아일랜드의 앤트림(Antrim)에서 6년 동안 양치기 생활을 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열정적인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꿈 속에서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어 탈출한 그는 200마일이 넘는 길을 헤맨 끝에 킬랄라(Kilala) 만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항해 준비를 마치고 있던 배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성 파트리키우스는 자신이 경험한 노예 생활을 자신의 회개를 위한 기간이자 앞으로의 사도직을 위한 하느님 섭리의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이 경험을 통해 아일랜드에 신앙을 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명에 따라 그는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 주교를 찾아가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4년 동안 머물렀고, 그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아일랜드를 회개시키려는 열망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교황청으로부터 그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432년경에 성 게르마누스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435년 3월 아일랜드에 도착하여, 아일랜드인들을 위한 초대주교였던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7월 7일)를 계승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은 수많은 원주민 추장들과 과감하게 만났고, 대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회개시킴으로써 섬 전체에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깊이 내렸다. 그는 442년과 444년에 로마(Roma)를 방문하였고 아마(Armagh) 대성당을 세워 아일랜드 선교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아일랜드에서 보낸 40년간의 활동에서 그는 학문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라틴어 공부를 비롯하여 아일랜드를 서방교회와 아주 가깝게 만든 공로자가 되었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기록한 영적 자서전인 "고백록"(Confessio)을 썼는데 그것은 일종의 호교서이기도 하다.

성 파트리키우스는 493년 3월 17일 처음으로 성당을 지은 아일랜드의 다운패트릭(Downpatrick)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상징은 뱀과 토끼풀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아일랜드에 있는 뱀들을 바다 속으로 몰아내어 없애 버렸다는 것과 그가 어떤 미신자에게 한 줄기에 잎사귀가 3개 달린 토끼풀을 가지고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였다는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아일랜드인들은 성 파트리키우스를 기념하는 성 패트릭 데이(Saint Patrick's Day)에 국화인 토끼풀을 옷깃에 달고 녹색 옷을 입는다.

 

강론   :   (루카 6,36-38)

 

<뿌린 대로 거둔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루카 6,37)."

 

이 말씀은 "뿌린 대로 거둔다." 라는 속담,

또는 '인과응보, 자업자득' 같은 사자성어와 비슷한데,

차이점이 있다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주권으로 그렇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행한 대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선을 행하면 상을 주실 것이고, 악을 행하면 벌을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삶'은 나중에 받게 될 심판을 '예약'하는 것과 같고,

사실상 심판의 결과는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억울할 것도 없고 불공정하다고 불평할 수도 없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에서

'탈렌트의 비유'에 나오는 세 번째 종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마태 25,24)."

 

이 말은 "주인님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시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투자했다가 손해를 볼까 두려워서

최소한 원금이라도 보전하려고 탈렌트를 숨겨 두었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선을 행하려고 했는데 그 일이 악한 결과를 만드는 일이 과연 있을까?

어떻든 그 종은 뭔가를 하다가 잘못되는 것을 피하려고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종의 말은 주인에 대해서 오해를 했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주인은 그가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았음을 꾸짖습니다(마태 25,26-27).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안 한 것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심판'과 '단죄' 라는 말은 사적인 복수를 뜻합니다.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복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복수하려는 마음을 참는 것은

어렵긴 하지만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참을 수 있는데도 안 참고 복수를 해버리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복수심을 참는 것은 할 수 있어도

용서를 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정말로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라면

예수님께서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용서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용서를 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용서가 안 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로마 12,19)." 라고 권고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 하느님의 정의와 심판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없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

자기가 정의의 심판을 집행하겠다고 나선다면,

세상은 그날로 난장판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악과 불의와 맞서 싸우는 것은,

그리고 선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 방법이 악하면 안 되고,

또 개인적인 앙갚음이 되면 안 됩니다.

 

그 문제에 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21)."

우리는 악에 굴복하면 안 되고, 악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선(善)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공적인 사법제도를 부정하는 말씀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법이 제대로 집행될 것입니다.

범죄자의 처벌과 교화는 사법기관에 맡기면 됩니다.

 

용서와 자비란, 죄를 지어도 그냥 내버려두는 일이 아닙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마태 18,15-17)."

 

그런데 이 말씀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는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뜻을 생각하면 모순되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꾸짖고 타이르는 것은 회개시키기 위해서이고,

회개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용서하기 위해서, 또는 이미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회개했기 때문에 용서할 수도 있고, 회개시키려고 용서할 수도 있는데,

순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죄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용서를 청하려면 먼저 회개해야 하고,

회개한다면 스스로 보속을 해야(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