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5월 1일 가해 부활 제2주간 목요일 (노동자 성 요셉)

dariaofs 2014. 5. 1. 01:30

 

 

예수님의 양아버지 성 요셉(Josephus)에 관한 내용은 마태오 복음 1-2장, 루가 복음 1-2장의 예수 탄생 기사에서 발견되는 것이 성서상의 근거이다. 이에 따르면 요셉은 다윗(David) 왕가의 후손이고, 요셉 가문은 유대아의 베들레헴에서 왔으나 갈릴래아의 나자렛으로 이사하여 목수 일을 하고 있었고, 이미 의인으로 존경받고 있었다.

그는 마리아와 약혼하였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가진 마리아와 파혼하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천사가 명한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는 마리아와 함께 아기 예수께 조배하러 온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았고, 헤로데의 영아 학살을 피하기 위하여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피신하였다. 헤로데가 죽은 후에야 가족들은 나자렛으로 돌아와서 살았다. 그와 마리아는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주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였다.

 

 예수가 12세였을 때 그는 마리아와 예수와 함께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을 다녀오다가 예수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다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아들을 찾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성 요셉은 루가 복음 4장 22절을 제외하고는 신약성서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성 요셉은 아마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이전에 운명한 듯 여겨진다. 외경인 “야고보의 원복음서”에는 그가 마리아와 결혼하였을 때 이미 노인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성 요셉에 대한 공경은 동방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요셉 이야기"라는 외경은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인기 있는 책이었다.

 

서방 교회에서는 아일랜드 사람인 웬거스 펠리르란 분이 9세기에 성 요셉 축일을 '기념'했다는 언급이 있으나 15세기까지는 요셉 공경이 확산되지 않다가, 1479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가 로마(Roma)에 요셉 신심을 도입한 이후 널리 전파되었다.

성 요셉 신심은 특히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와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 de Sales, 1월 24일)에 의하여 보편화되었고, 1870년에 교황 비오 9세(Pius IX)가 요셉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으며,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요셉을 가장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서 성모님 다음의 위치로 올리셨다.

 

‘노동자의 수호자’란 칭호는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가 부여하였고,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사회정의의 수호자’로, 또 비오 12세는 1955년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해서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제정 선포하였다. 성 요셉은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이다.

 

강론   :    (마태 13,54-58)

 

<예수님도 노동자>

 

요셉은 다윗 왕의 후손입니다.

만일에 유다 왕국이 멸망하지 않고 다윗 왕실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또 요셉이 직계 자손이라면, 요셉은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셨을 것이고...

쓸데없는 상상이지만 모든 것이 다 어색하고 이상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면 복음서의 내용이 완전히 다르게 되었을 것이고,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교리도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역시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집안에서 태어나셔야 어울리는 모습이 됩니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실 때,

다윗의 후손이라는 혈통과 시골 목수의 가난함을 동시에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결과론이 아닙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

 

예수님이 '여느 사람'으로 세상에 오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그런 보통 사람인 요셉이 선택된 것인데,

이것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직업으로 목수를 선택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수가 되신 것은(마르 6,3)

단순히 요셉의 직업을 물려받으신 일이 아니라,

'낮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낮은 사람이 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기 때문에

높은 사람들이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높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으려면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자기를 낮추어라." 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노동은 신성하다." 라는 말은

노동자들이 듣고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빈말이 아니라 '진리'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노동자의 모습이고(창세 1장),

예수님도 요셉처럼 노동자(목수)였기 때문에 노동이 신성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에 "노동은 신성하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강론을 마친다면, 그것은 진짜로 빈말입니다.

지금 이 땅의 현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선 먼저

교회 안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부터 반성해야 합니다.

과연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여건인가?

교회 밖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는 분들이

자기가 데리고 있는 직원들에게는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런 경우에 성직자들이 자본가 같은 모습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신앙인으로서 희생하고 봉사한다고 해서

노동자로서 먹고사는 것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또 교회 기관의 기관장들이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선도 반성해야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노동조합 자체를 무슨 불순 조직으로만 생각하면서

노조 설립 자체를 막으려고 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세상 속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교회의 본분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일해야 합니다.

 

또 공동체 안에서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반성해야 합니다.

본당의 중요한 직책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노동자들은 발언권도 제대로 얻지 못하는 모습이라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모습입니다.

 

교회가 세속처럼 직업, 학력, 학위 등을 중시한다면,

예수님은 당신의 교회에서도 천대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였고, 학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 같은 분도 교회 안에서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최고의회 의원들이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사도 4,13).

어부 출신이었던 베드로와 요한은

세속의 기준으로는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그들을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습니다(갈라 2,9).

 

세속에서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교회에서도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면,

그곳은 교회가 아니라 그냥 세속입니다.

(교회에는 상류층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모두가 한 몸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노동자 성 요셉' 축일을 정한 것은

단순히 요셉 성인을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노동자였음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느님도, 예수님도 노동자였음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현실이 먹고살기 힘들고 고달프다고 해서 노동을 천시하고,

노동자들을 천대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천대하는 일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우선 먼저 교회 공동체부터

어떤 차별도 없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소외당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