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지금여기 강론대- [임상교 신부] 보고 듣는 것이 사실이 아니다

dariaofs 2014. 5. 4. 00:30

5월 4일 (부활 제3주일, 생명 주일) 루카 24,13-35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TV전원을 뽑았습니다. 불편함이 아니라 분노가 계속 치밀어 올라옵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노동을 하곤 합니다.

 

오늘은 성당 성모상 뒤편의 풀을 뽑아야겠습니다. 아픔이라는 감정이 분노로 바뀌면서, 지금 여기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고통을 강제하는 현실 구조를 바꾸기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합니다.

 

본당의 사제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예언직을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서 저의 역할을 고민합니다.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앎’은 어떤 통로로 알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의 앎의 통로가 정상적인 것일까요.

 

때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내가 믿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지 분별해야 합니다.

 

저도 이런 부류에 속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보고 싶은 것을 봅니다.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면서 제 안에 분노가 차오르는 이유는 어쩌면 제가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보고 싶은 것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의 감정이 생겨나면 잠시 멈춰서 침묵합니다.

 

그런데도 분노의 감정은 가라앉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사실들을 접할 때마다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생떼 같은 자식들을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시킨 이 정부와 돈을 위해서라면 생명의 가치도 휴지조각처럼 던져 버리는 기성세대의 의식 구조가 분노를 더욱 크게 만듭니다.

 

사실을 전해주어야 하는 방송은 권력의 나팔수가 되었습니다. 취재하지 않고 받아쓰기를 하면서 자신을 기자라고 드러냅니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고통과 아픔을 마치 쇼윈도에 전시된 상품처럼 나열합니다. 자식을 잃고 가슴을 쥐어짜는 어버이들의 고통을 전시공간으로 끌어들여 전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조작합니다. 전시공간으로 끌어들인 어버이들의 고통은 그 순간 상품이 되고,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그 상품을 구매합니다.

 

구매한 상품을 수용하기가 너무 벅차면 사람들은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그리고 곧 이런 말들을 하지요. ‘이제 새로 시작합시다.’ ‘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성금을 모읍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움직임에 동참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최소한의 내 역할을 다했으니 이제 잊어도 되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는 또 다시 망각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잊음’이 ‘덕’이 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됩니다.

 

묻고 싶습니다. 과연 이것이 정상일까요? 이렇게 사는 것이 정상적인 삶일까요?

 

   
     ▲ <엠마오의 순례자들>, 자크 스텔라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대화를 나누어도 제자들은 스승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수난 이전에 제자들이 보았던 스승 예수는, 스승 예수께서 보여주시고자 했던 예수가 아니라 그들이 보고 싶었던 예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고 믿고 싶어 했던 스승 예수가 실패하자 그들과 함께 동행 했던 스승 예수를 마음속에서 지워버립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지금 여기에서 동행하고 있는 스승 예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실은 그들이 믿고 싶어 하던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보고 들으며 믿음을 간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믿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단 말입니까”라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은 사실 스승 예수가 아니라 제자 자신들을 향한 것입니다.

 

“네가 진정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사실인가?”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십니다.

 

“무슨 일이냐?”

오늘 저도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한계성을 지닌 사람인지라 해답을 찾기 위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저는 진실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찾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속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속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는 제가 가야하는 길을 알려주고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주어지는 소명, 부르심이 됩니다.

 

제가 이 시대, 이런 사회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이유, 특히 이런 시대에 사제로 부르심을 받고 응답한 이유, 하느님의 뜻을 찾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늘과 땅이 결합되었음을 고백하는 교회의 신앙이 저의 신앙입니다. 제가 살아가는 이 땅이 예루살렘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부활이 끝없이 반복, 재현되는 이 땅,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과 가족들의 모습에서 주님의 수난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수난이 부활로 이어지기를 희망하며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찾고 실천하고자 노력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예루살렘입니다.

주님,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그 가족들에게 당신 자비의 손길을 펼치시고, 이 사회에 당신 정의를 세우소서.



임상교 신부 (대건 안드레아)
대전교구 청양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