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0.1-10)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들의 목자이다. 나는 문이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따라가는 양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목자가 되어 주시고 목자의 음성을 따라간 양들이 편안한 안식처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마련된 문이 되십니다.
그러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어렵기만 합니다. 그런 마음을 잘 설명이라도 하듯 독서에서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하여 자세하게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못 박은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메시아라는 소리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생각하고 죄책감이 들어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묻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양으로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 삶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는 사실 길 잃은 양처럼 헤매고 있었습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갈 곳을 잃은 양처럼 헤매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당신의 음성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친히 우리가 가는 길과 문이 되어 주시며 안식처가 되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삶을 따라 삽니다.
베드로사도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같은 삶을 우리도 따라 살아야 한다. 그 구체적인 모습도 잘 설명해 주십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악을 악으로 대응하지 말고 오히려 폭력을 폭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하신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
왜냐면 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자기 자신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길 잃은 양들은 이제 이런 목자의 음성을 따라서 목자가 가는 길을 갑니다. 그리고 ‘문’이신 그리스도를 통과하게 됩니다. 이는 사랑으로 통하는 길입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 양과 목자가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양과 목자는 서로 인격적인 관계, 신뢰하는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부를 때 그냥 부르시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개개인의 마음 안에 당신과의 특별한 사랑을 불어넣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는 것은 도둑이며 강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기만 한다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매일 성체성사를 통해서 우리와 일치를 이루시길 원하시고 당신을 내어주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그 목소리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유영근 야고보 신부(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 본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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