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부활 제5주일) 요한 14,1-12
D-day : -000일. 이런 표시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켰습니다. 갑자기 멍한 느낌이 듭니다. 화가 났습니다. 경축하고 축하해야 할 일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지만, 왠지 마음속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올라옵니다. 마치 교회가 하늘에 둥둥 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나이를 먹고 사제직을 수행하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착한 사제들을 많이 목격합니다. 그래서 더 두렵습니다. 착함이 사제의 덕목이 되는 현실이 다가올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사제로써 16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40대 후반의 나이, 침묵이 덕이 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저는 착하지도 않고 침묵하기도 싫어합니다. 땅위에 세워진 교회, 땅은 생명의 바탕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의 바탕 위에 교회는 세워졌습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공존하는 이 땅위에 주님은 육화하셨고, 하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으며, 수난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부활 성야 미사의 부활찬송을 통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오늘 이 밤, 하늘과 땅이 결합되었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된 시간을 살아가는 교회는 땅위에서 하늘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교회가 증언하는 하늘은, 땅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고차원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이 땅위에서 실현되고 완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목적은 땅을 바꾸려는 것이지, 하늘을 동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현실과 무관한 선포는 백성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아닌 미신을 믿게 만듭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고백합니다. ‘모든 존재 안에 하느님께서 살아계시다’.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생명을 담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잡초 안에도 하느님 생명의 빛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산 속에 피어있는 한 송이 꽃을 꺾지 않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무를 함부로 뽑지 않습니다. 모두가 생명이고 그 생명 속에 하느님의 빛이 현존하십니다. 살아있는 생명은 살아있는 것을 먹습니다. 사람은 태초부터 하느님을 먹고 살았습니다. 존재 안에 현존하시는 빛을 먹고 그래서 모든 생명들은 하느님을 닮아갑니다. 더군다나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사람은 언제나 생명의 빛이 현존하는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사람을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304명의 성전이 무너졌고, 304명과 연결된 수많은 성전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생명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빛을 장사치의 거래 물품으로 바꾼 사람들에 의해서 성전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차가운 아들을 품에 안으신 마리아의 비통이 느껴집니다. 마리아께서 아들의 수난과 죽음을 보시면서 느끼신 고통이 차가운 바다 속에 사랑하는 자식들과 부모를 잃은 가족들의 고통과 다를까요. 저는 같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더 많이 화나고 아픕니다. “너희는 내가 가는 길을 알고 있다” 주님께서 가시는 길은 영광의 길입니다. 부활의 길입니다. 하늘을 향한 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가시는 하늘을 향한 길은 땅위의 죽음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길입니다. 땅의 길을 걷지 않고는 불가능한 길 그래서 교회가 걸어야 하는 길도 땅위의 길이어야 합니다. 땅의 아픔과 함께 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영광의 길은 없습니다. 토마스는 말합니다.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늘만 바라보았던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늘로 가기 위해서는 땅을 걸어야만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땅이 곧 하늘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땅의 현실이 고통스럽습니다. 땅의 고통은 하늘의 고통입니다. 무죄한 이들과 의로운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땅의 울부짖음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 교회가 존재합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교회는 하늘을 살기 위해서 땅의 고통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5.18 광주항쟁을 오늘의 기억 속으로 되살려내야 하고, 4.16 세월호 고통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내야 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선포해야 합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주님께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하늘을 향하는 길을 찾는 값진 돌이 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시는 돌이 되십니다. 주님께서 걸으신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찾는 다면, 모퉁이 머릿돌은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돌이 될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하느님을 향한 덕으로 승화시켜 줍니다. 믿음을 지니지 못할 때, 교회는 세상과 타협을 시작하고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립니다. 땅과 유리된 교회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교회는 더 이상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교회가 아니라 이익단체가 됩니다. 교회는 주님의 발자국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포개어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언제나 교회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 이 땅위에서 찾아야 합니다. 땅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교회, 가난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교회, 구조적 불의에 저항하며 하느님 정의의 실천을 주장할 수 있는 교회를 꿈꿉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자 합니다. “주님, 당신 정의를 이 땅위에 드러내시고, 생명을 상품과 도구로 만드는 자들을 심판하소서.”
땅위에 존재하는 생명의 상태와 연결되지 않는 믿음이 가능한 것일까요? 저는 단언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땅위에 존재하는 생명의 상태와 연결되지 않는 믿음은 사기입니다.
임상교 신부 (대건 안드레아)
대전교구 청양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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