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5월 20일 가해 부활 제5주간 화요일(성 베르나르디노 사제)

dariaofs 2014. 5. 20. 02:09

 

 

성 베르나르디누스(Bernardinus, 또는 베르나르디노)는 1380년 9월 8일 이탈리아 시에나 근방 마사 마리티마(Massa Marittima)에서 정치가였던 아버지 톨로 델리 알비체스키(Tollo degli Albizzeschi)와 어머니 네라 델리 아베두티(Nera degli Avveduti)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3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다시 3년 뒤 아버지마저 여의고 고아가 되어 친척에게 맡겨져 양육되었다. 1391부터 1397년까지 시에나에서 인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그곳 대학에서 3년 간 교회법을 배운 그는 라틴어 고전뿐만 아니라 성경과 신학에도 심취하였고 신심의 실천에도 열의를 보였다.

1400년 흑사병으로 온 나라가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을 때, 그는 약 4개월 동안 시에나의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Santa Maria della Scala) 병원에서 흑사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1402년 작은 형제회에 입회한 그는 이듬해 9월 8일 콜룸바요 수도원에서 허원을 하였고, 1404년에 사제품을 받고 다음해에 세지아노(Seggiano)에서 설교를 시작한 이래 죽기까지 설교 활동을 계속하였다.

성 베르나르디누스는 1408년부터 다음해까지 페라라(Ferrara)에서, 1410년에는 시에나와 파비아(Pavia)에서 설교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예수 성명에 대한 설교를 시작함으로써 롬바르디아(Lombardia) 지역의 복음화에 기여하였다.

 

1417년부터 그는 밀라노(Milano)에서 대중 설교가로서 활동하면서 뛰어난 웅변술과 정열적인 설교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걸어서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 지방을 순회하며 정열적으로 설교하였는데, 그의 주된 설교 주제는 예수 성명에 대한 공경과 참회와 사랑의 실천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도박, 고리대금업, 마술, 미신 등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한편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정치적 권력 투쟁을 그 시대의 근본적인 악으로 비판하였다.

그는 특별히 예수 성명의 신심을 전파했는데, 이 신심은 교회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사람들이 그 신심의 깊은 신학적 기초를 깨닫도록 그리스어 예수(ΙΗΣΟΥΣ)의 첫 세 글자를 로마자로 표시한 ‘IHS’를 고안하였다. 그가 만들어 낸 이 모노그람마(Monogramma)는 ‘이 표징 안에서’(in hoc signo),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징으로’ 혹은 ‘인간의 구원자 예수’(Jesus hominum Salvator)라는 뜻이다.

 

그는 빛나는 태양의 중앙에 이 글자를 새긴 문장을 사용하여 설교를 마무리할 때마다 공경 예절을 행하였다. 그는 이 문장으로 어떤 미신적인 상징이나 특정 파벌의 훈장 등을 대체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는 예수의 성명을 성경의 요약이요 일치의 상징으로 생각하였다. 그 후 성 베르나르디누스와 그의 제자들의 사도직을 통해서 예수 성명에 대한 공경은 널리 확산되었고, 이 문장은 교회와 가정, 공적인 건물 등에도 사용되게 되었다.

반면에 당시의 일부 인문주의자들과 신학자들은 이러한 그의 활동을 불신하고, 이 기도를 위험한 혁신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1424년 볼로냐(Bologna) 대학에서 예수 성명 신심에 대한 공식적인 반발이 시작되었다. 무려 8년 동안 그는 교도권과 신학계로부터 숱한 고발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1432년 1월 7일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Eugenius IV)의 칙서 “아포스톨리케 세디스”(Apostolicae Sedis)를 통해 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그의 활동이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마르티누스 5세(Martinus V) 교황으로부터 시에나의 주교로 임명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설교활동에 전념하였다. 또한 1430년부터 12년 동안 프란치스코회 엄률회의 총대리로 활동하면서 프란치스코회의 보다 엄격한 규칙을 회복하자는 수도회 내부의 개혁 운동에서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1439년에는 피렌체(Firenze) 공의회에 참석하여 그리스 정교회와의 일치를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1444년 고향에서 설교를 마친 후 그는 고령의 나이와 쇠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나폴리(Napoli) 왕국을 복음화하기 위해 출발하였으나, 아브르초(Abruzzo)의 라퀼라(L'Aquila) 부근에서 열병에 걸려 라퀼라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 머무르다가 그곳에서 5월 20일 사망하여 그곳 성당에 묻혔다.

 

그의 문장은 IHS가 새겨진 평판(平板) 혹은 태양이고, 광고업자들의 수호성인이다. 그는 1450년 5월 24일 교황 니콜라우스 5세(Nicolaus V)에 의해 시성되었다.

 

강론   :   (요한 14,27-31ㄱ)

 

<평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라는 말씀은

"나를 믿어서 참 평화를 얻어라." 라는 뜻입니다.

(무슨 물건을 주는 것처럼 '평화' 라는 것을 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참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안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 지켜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지켜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보호와 구원을 믿지 않음으로써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산란해지는 일, 겁을 내는 일'을 한마디로 줄이면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평화가 없는, 또는 평화를 잃은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두려움'은 '평화'의 반대말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평화'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또는 처음부터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 상태가 바로 평화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두려움의 종류나 성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불명예를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굶주림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건강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는 일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박해와 고난을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은 심판과 지옥을 두려워하고...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도 모든 두려움의 끝에는,

또는 모든 두려움의 바탕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숨어 있습니다.

모든 두려움은 사실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죽는 것을 안 무서워한다면 무서워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우리의 육신을 죽일 수 있는 자들을 두려워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마태 10,28).

그런 자들을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믿음 없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완전히 제압하시는 분입니다.

"......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요한 14,30)."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라는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나는 그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 라는 말씀이 됩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것의 '주님이신 분'입니다.

따라서 그 어떤 세력도 예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이라는 것도 지배하시고 제압하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세상의 우두머리' 라는 말은

우리를 두렵게 함으로써 우리의 평화를 빼앗아가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승리자이신 예수님 편에 서는 것이고,

그래서 평화를 얻을 수 있게 되는 일입니다.

안 믿는 것은 패배자인 악한 세력의 편에 서는 것이고,

그래서 평화를 얻지 못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궁극적인 승리가 예수님 쪽에 있다고 해도

지금 당장에는 악한 세력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이

인간 세상의 현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세상이 주는 평화' 라는 말이 그것을 가리킵니다.

악한 세력과 타협하거나, 아니면 그런 세력에게 굴복하면

안전과 생명과 평화를 얻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착시 현상일 뿐입니다.

잠깐 동안만 편안해지는 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작은아들은

자기 마음대로 방종하게 사는 동안에는(루카 15,13)

그 생활을 자유와 평화라고 착각했을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에 나오는 '하나니아스와 사피라'는

사도들을 속이고(사도 5,2) 일시적으로 느꼈던 '만족감'을

평화라고 착각했을 것입니다.

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던(창세 3,6) 그 순간에 느꼈던

달콤한 맛을 평화라고 착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일시적이고 허무한 쾌락이었을 뿐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헤로데가 베드로 사도를 붙잡아서 죽이려고 했을 때,

사형집행 전날 밤에 베드로 사도가 감옥에서

아주 태평스럽게 자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사도 12,6).

그 모습을 보면 아무런 두려움도, 근심 걱정도 없는 모습입니다.

날이 밝으면 사형당할 죄수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바로 그런 평화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안 죽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태연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평화를 누린 것이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예수님과 함께라면..." 이라는 그 믿음이 곧 평화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