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파타!>
9월 9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시는 장면입니다.
흔히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은 말도 잘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고쳐 주신 그 장애자는
선천적으로 청각 장애가 있어서 듣지 못했고,
그래서 말도 잘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 장애자가 후천적인 장애자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생각할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마르코복음 9장 14절-29절에 나오는,
마귀 들려서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하는 아이의 이야기와 혼동했거나,
아니면 마태오복음 9장 32절-34절, 또는 루카복음 11장 14절에 나오는,
마귀 들려서 말을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와 혼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귀 들려서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것은 후천적인 장애입니다.
그러나 지금 마르코복음 7장 31절-37절의 장애자는 선천적인 장애자입니다.
또 그 장애자가 이방인이었는지, 유대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에파타' 라는 아람어를 사용하신 것을 생각하면
그 장애자가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통 한마디 말씀만으로 병자나 장애자를 고쳐 주셨는데,
지금 이 이야기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동작을 하시면서 고쳐 주십니다.
이것은 그 장애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됩니다.
그가 듣지 못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방법으로 치유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치유의 기적은 '에파타!' 라는 한마디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의 귀가 열렸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듣게 되었다는 뜻이고,
그의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 불완전했는데 이제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놀라서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라고 경탄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훌륭하다.' 라는 말은 원문대로 번역하면 '좋게 하셨다.'입니다.
이 말은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 장면에 반복해서 나오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라는 말의 '좋았다.'와 비슷한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자' 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장애자를 고쳐 주신 것은 새로운 창조와 같다.',
또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신 일이다.' 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마태 11,5 ; 루카 7,22)과 비슷한데,
이 말은 '예수님은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는 메시아'
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때 바리사이들에게 하신 말씀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 19,40)."
만일에 제자들이 '예수님은 메시아' 라는 것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돌들이 대신해서 선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인데,
아무도 복음 선포를 막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누구든지 자기의 믿음을 증언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말입니다.
또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7)."
만일에 제자들이(신앙인들이) 들은 것을 선포(증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장애자와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장애자이고,
듣고 믿기는 했지만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말을 못하는 장애자입니다.
'복음(기쁜 소식)'은 듣기만 해도 되는 소식이 아니라,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서 함께 기뻐해야 하는 소식입니다.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고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신체적인 장애는
그 자신의 탓이 아닙니다.
그러나 들을 수 있는데도 안 듣고,
말할 수 있는데도 말하지 않는 영적인 장애는 그 자신의 탓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장애자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들어야 할 '말씀'은 안 듣고 듣지 말아야 할 말만 듣는 것,
전해야 할 '말씀'은 전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말만 하는 것,
그것도 역시 장애입니다.
그런 경우에... 값비싼 스마트폰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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