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8,27-35)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고 물으시는데(마르 8,29),
이 말은 "너희는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뜻입니다.
또 "왜 내 제자가 되었느냐?"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요한복음 6장 68절-69절에는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고,
스승님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라는 대답이 있습니다.)
마르코복음에는 없는 내용인데,
마태오복음에는 베드로가 대답한 후에 예수님께서 그를 칭찬하시면서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시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는 내용이 있습니다(마태 16,17-19).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베드로가 올바르게 대답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메시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리스도(메시아)와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그리스도(메시아)는
다윗 왕국을 복원하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회복하는 그런 정치적인 구세주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리스도(메시아)는
온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는 영적인 구세주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베드로의 대답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아직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과 대답 다음의 내용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예고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마르 8,31)."
'반드시 ... 해야 한다.' 라는 표현은
그 일이 하느님의 뜻에 의한 일이고,
틀림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왜 꼭 그렇게 죽어야만 하는가?
안 죽고 바로 승리의 영광으로 건너뛸 수는 없는가?"
라고 질문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베드로도 그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왜?' 라는 의문은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신앙인의 의문입니다.
정답은 '모른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하고, 모르니까 '신비'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에 들어 있는 '반드시' 라는 말이
하느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어떻든 결과만 놓고 보면,
하느님은 수많은 방법 가운데 '십자가' 라는 방법을 선택하셨고,
예수님은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나는 왜 성당에 다니는가?)"
어떤 사람은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좀 더 잘 먹고 잘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병이 낫고 건강을 회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 사업, 시험, 출세, 승진 ... 기타 등등을 기도합니다.
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 기도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만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만 기도하고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하지 못하면,
또는 안하면,
그것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현세적인 문제만 해결해 주는 해결사로 믿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만 기도하다가 갑자기 시련이 닥치면
이해하지 못하고, 믿음이 흔들려서 쉽게 꺾여버립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나오는 '돌밭'이나 '가시덤불'이
바로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돌밭'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사탄'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지 못하겠다.' 라고만 했으면 돌밭이지만,
아예 예수님을 막으려고 했기 때문에 사탄이라고 혼난 것입니다.
(그가 사탄이라는 것은 아니고, 그의 행동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생애를 성탄절에서 시작해서 성금요일에 끝난 것으로만 생각하고,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생애는 '하느님'에서 시작해서 지상의 생애를 거쳐서
'하느님'으로 '영원히' 계속된다고 믿습니다(필리 2,6-11).
그 예수님을 믿는다면
십자가의 길이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이어져 있다는 것도 믿어야 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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