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축제
1)박해받는 이들의 축제 '하누카' 20120817블로그 20120818미바회
유다인들의 전통 중 축제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축제를 통해서 신앙공동체의 결속을 다 지고, 과거에 있었던 민족의 특정한 경험을 기억하며, 현재를 재확인하고, 그 현재를 희망찬 미래에의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다 축제의 특징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휴식과 식사를 통해 서로 즐기며 기뻐하는 것, 둘째로 특별한 기도를 바치고 회당에서 의식을 거행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각각의 축제와 의미에 부합되는 특정한 관습과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유다의 축제에는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사실이 분명히 나타난다. 유다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살고 있는 바로 그 시대의 관심과 변화되는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축제를 통해서 즉 과거의 절절했던 민족 경험을 기억하고 재현하면서 새로운 영감과 그 시대에 필요한 위안을 얻고 삶의 의미를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하누카도 이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축제의 의미는 신약의 이스라엘인 우리에게 각각의 절기나 축일이 주는 의미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누카는 기슬레우월(양력 11-12월경) 25일에 시작해서 8일간 계속되는'성전 봉헌 축제'이다.
8개의 촛불에 매일 하나씩 불을 밝혀간다고 해서 '빛의 축제'라고도 한다.
하누카 축제의 유래는 마카베오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중반 경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던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왕은 왕국내 모든 민족이 그리스신을 숭배하고 그리스 관습을 따를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대해 많은 유다인들이 야훼신앙을 고수하자 안티오쿠스왕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율법을 지키는 유다인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하였다.
거듭되는 가혹한 탄압으로 상당수의 유다인들은 이교의 신을 섬겼고 일단의 경건한 유다인들은 순교하였다. 사제 출신인 마따디아와 그의 아들들은 뜻을 같이하는 유다인과 함께 무력 항쟁을 전개하여 마침내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그들은 안티오쿠스왕이 더럽힌 성전을 정화하고 기슬레우월 25일에 성전을 다시 봉헌하였다.
그날은 바로 안티오쿠스왕의 성전 모독 칙령이 공포된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율법대로 새로 만든 번제 제단에 희생제물을 바치고 할렐(Hallel)을 노래하며 8일간 축제를 즐겼다. 마카베오 및 그 형제들과 이스라엘 회중은 매년 기슬레우월 25일부터 8일간 승리를 축하하며 제단 봉헌 축제를 지내기로 정하였다. 이것이 마카베오서에 나오는 성전 봉헌 축일의 유래이다.
그런데 마카베오 상하권 어디에도 하누카 예식의 중심인 빛의 예식의 유래에 관한 몇 가지 전 설이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 유력한 것은 '기름 전설'이다. 유다 마카베오의 그 일행이 성전에 들어갔을 때 그리스인들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기름은 단지 하루분의 양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 하루분의 기름으로 불은 8일간이나 계속 타서 새 기름이 준비될 때까지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누카 빛의 예식은 바로 그 기적을 기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기름 전설'이다.
이 이야기는 기원 후 70년 성전 파괴 이후 로마의 통치 하에서 이스라엘이 군사적 승리나 저항 운동 등을 강조할 수 없을 때 하누카 축제를 유지․존속되도록 하는데 공헌하였다.
그 시대에 하누카는 더 이상 군사적 승리나 독립에의 희망이 아니라 유다인들이 어디에 살건 그들이 소수 민족으로서 살아남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가 된 것이다. 하누카 빛의 예식이란 8개의 촛대를 한 줄로 배열해 놓고 첫째 날 밤에 제일 오른쪽에 불을 켜 고 그 후 매일 하나씩 왼편으로 불을 밝혀 가는 것이다.
8일에 걸친 하누카 축제의식은 매일 밤 그 빛과 조상들에게 일어났던 기적에 대하여 감사하는 기도로 시작된다. 첫째 날 밤에는 그 순간 에 자신들을 살아 있게 하심을 감사하는 기도가 덧붙여진다. 기도 후에는 짤막한 글과 함께 빛의 예식이 거행되며, 빛이 밝혀진 후 찬송을 한다. 그 외에 매일 밤 특별 기도문과 찬양의 시편 113-118편이 바쳐지고 관련성서 구절이 봉독된다.
하누카 축제 기간 동안에는 다른 축제 때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이 축제를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스승에게 선물을 하며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20세기에 와서 유다인들은 하누카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였다. 하누카의 유래를 통해서 다수 민족 속에서 한 소수 민족이 문화적 주체성과 종교적 신념을 지키고자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다 마카베오와 그 동료들은 다른 민족과 다를 수 있는 권리를 찾고자 싸운 것이다. 하누카는 또한 압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그 압제 세력이 없애고자 하는 가치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호하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마카베오와 그 동료들은 안티오쿠스에 대항해서 싸웠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들이 없애려고 한 유다교의 가치를, 성전과 제단을 수호하기 위해 싸웠던 것이다.
진리를 따르는 길은 때로 우리에게 주변 사람들이나 주변 환경과는 철저하게 다른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고집스러움을 요구하기도 한다. 자신의 고집스러운 신념을 안으로 숨기며 살지 않고 겉으로 표방하며 그것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시대를 초월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이러한 상황에 부딪쳐 갈등을 겪어 왔다. 이스라엘이 수천 년을 두고 끈질기게 지켜온 하누카 축제는 바로 이스라엘의 고집스런 신념의 적극적인 표방이자 그 신념의 정당함을 재확인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법원 판사이자 시오니스트인 브랜디스(L.D.Brandis)는 하누카의 이러한 의미를 다음 과 같이 아름답게 요약하고 있다.
하누카는 승리를 축하하는 마카베오의 축제이다. 그러나 단지 군사적 승리를 축하함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에 대한 영적인 것의 승리를 축하함이며 외부의 적- 그리스인에 대한 승리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한 우리 안에 있는 적을 이겼음을 축하하는 것이다. 하누카는 또한 민중의 이익을 슬그머니 배신해 온 무사 안일한 소수의 특권 권력 계층에 대한 민중의 승리, 즉 귀족 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축하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누카 촛대>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요한 10.22).
신약성경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하누카' 기록이다.
이렇듯 예수님 시대에도 봉헌 축제는 있었다.
유다인들은 이 축제를 하누카(hanukkah)라 불렀다.
직역하면 봉헌이란 뜻이다.
그들은 봉헌축제를 '키슬레우 달' 25일부터 8일간 지냈다.
양력으로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해당된다.
축제 첫날에는 '하누카 촛대'라 불리는 독특한 장식에 촛불을 켠다.
그런데 첫날은 한 자루만 켜고 이튿날은 두 자루를 켜고 이런 식으로 8일 동안 차례로 불을 붙인다.
유다인의 불같이 그렇게 펴져나감을 기원하는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성탄절을 지키지 않기에 하누카 촛대에 많은 장식을 해왔다.
'크리스마스 트리' 대신 촛대를 장식했던 것이다.
하누카 축제는 마카베오 독립운동과 연관 있다.
당시 이스라엘은 희랍의 지배를 받았고 임금은 '에피 파네스'라 불린 안티오코스 4세다.
그는 희랍문화를 심는다는 구실로 유다인들을 가혹하게 다루었다.
할례와 안식일을 금지시켰고 율법서를 불태우며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게 했다.
어기면 사형이었다.
기원전 167년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억지로 참배하게 했다.
이렇게 되자 유다인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이것이 마카베오 독립운동의 시작이다.
에피파네스는 군사들을 보내 반란을 진압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그의 주력 부대는 인근의 '파르티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마카베오는 예루살렘을 점령했고 성전에 세워진 제우스 상을 제거하며 이단자들을 몰아냈다.
기원전 164년 12월의 일이다.
그는 제단을 다시 만들고 율법에 따른 감사의 제사를 바쳤다.
그리고 이날을 기념하는 제사를 바쳤다.
그리고 이날을 기념하는 축제를 지내기로 했다.
이것이 '성전 봉헌축제'의 유래다(2마카 10.8).
개신교에서는 수전절 修殿節이라 번역했다.
성전을 정화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용어다.
전승에 의하면 성전을 탈환한 마카베오는 제단의 등잔대에 불을 밝히려 했다.
그런데 기름이 하루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기름이나 사용할 수는 없었다.
율법에 따라 대제사장이 승인한 기름만이 가능했다.
그런데 하루 분량의 기름이 8일간 불을 밖히며 타올랐다고 한다.
유다인들은 이를 기적으로 여기며 8개의 등잔이 달린 메노라(등잔대)를 만들고 8일간 기년했던 것이다.
이후 기름대신 초를 사용하면서 하누카 촛대가 등장하게 되었다.
<신은근 바오로 신부>
유대인의 축제
2)하느님과 함께 하는 설날, '로쉬 하샤나' 20120820미바회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 마무리 작업과 새로운 시작의 계속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해를 끝내고 새로운 해를 맞는 '설날'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흐름 속에서 과연 우리가 어느 시점에 서 있고 이제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설날'은 그런 의미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중요한 명절로 되어 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도 역시 '설날'은 가장 중요한 축제 중의 하나이다. 그들의 '설날'축제가 지니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철저하게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강조하고 재확인한다는 점이다.
다른 이스라엘 축제를 통해서도 드러나듯이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생활의 리듬 속에서 야 훼의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그 분의 자리를 마련했다. '나팔 축일' 혹은 '설날'로 불리워지는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는 그 한 좋은 예로서 이스라엘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축제이다.
로쉬 하샤나는 이스라엘력으로 칠월의 첫날로서 이스라엘의 새해 축일 곧 설날이다.
레위 23장 에 보면 "칠월 초하룻날 너희는 쉬어야 한다. 나팔을 불어 거룩한 모임을 알려야 한다. 나팔을 불어 거룩한 모임을 알려야 한다. 너희는 모든 생업에서 손을 떼고 야훼께 제물을 살라 바쳐야 한다"라고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새해맞이 준비에 대해 명령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 부 분이 로쉬 하샤나에 관한 가장 자세한 성서 기록이라고 할 정도로 이 축제는 성서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사실은 유다인들을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게 했던 삶의 원동력인 교리나 관습이 대부분 구전으로 전승되었다는 점이다. 안식일의 여러 가지 법규에서처럼 로쉬 하샤냐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구전에 의하면 로쉬 하샤나는 첫째, 하느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고,
둘째 1년간의 여러 가지 공과에 대해 하느님께 심판을 받는 날이며
셋째,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유대를 재확인하는 날 이다. 즉 로쉬 하샤나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우주의 왕임을 기억하며,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자신의 의무와 성조들의 신앙을 통해 다져진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이스라엘은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
탈무드 전승은 하느님께서 로쉬 하샤나에 3권의 책을 펴서 의인, 악인, 그리고 의인도 악인도 아닌 사람의 이름을 구분해서 기입한다고 전한다. 세 번째 그룹의 심판은 속죄의 날까지 연기되며, 심판의 결과에 따라 이스라엘의 새해 운명이 결정된다고 한다. 즉 개개인의 공과에 따라 개인의 운명 및 그가 속한 공동체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심판 개념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따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생활 안에 철저하게 하느님의 자리를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로쉬 하샤나가 이스라엘에게 이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 날을 맞기 위해 한 달간 준비를 한다. 로쉬 하샤나 바로 전날에는 목욕과 이발을 하고 샵밭 옷을 입는다.
그리고 회당에 모여 자신들이 일 년간 했던 지키지 못한 맹세가 무효임을 선언하는 예식을 거행한다. 헛된 맹세는 심판 때 중죄가 되기 때문이다.
로쉬 하샤나는 이렇게 엄숙한 심판의 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잔칫날이다.
그 즐거움은 하느님이 여전히 자신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계신다는 신뢰 때문이다.
로쉬 하샤나 당일의 의식 자체는 다른 축제 때와 비슷하다. 주제에 맞는 기도를 바치고 성서를 봉독한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나팔(쇼파르, shofar)을 부는 예식이다.
나팔로는 아브라함의 이사악 제헌을 상기하는 의미로 주로 양의 뿔 나팔이 사용된다. 소의 뿔은 이스라엘의 우상이었던 금송아지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사용되지 않는다.
뿔은 약간 굽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굽혀야 함을 상징하기 위해서이다.
나팔이 가장 중요한 로쉬 하샤나의 상징인 까닭에 나팔소리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그 중에서 가온(S,Gaon. 기원후 892-942년)이 설명한 다음 열 가지 의미가 가장 널리 인정되고 있다.
1 로쉬 하샤나는 하느님의 창조와 통치를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고 나팔 소리는 하느님의 왕권 을 선포하는 소리다.
2 로쉬 하샤나는 곧 뒤따라 올 열흘 간의 속죄의 날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 서 나팔소리는 참회를 요구하는 소리다.
3 나팔 소리는 또한 뿔 나팔 소리와 함께 이루어졌던 시나이 계시를 상기시킨다.
4 나팔 소리는 인간을 일깨우는 예언자의 목소리와도 비교될 수 있다.
5 나팔 소리는 창칼이 부딪치는 전쟁터의 소리이기도 하다. 즉 이스라엘에게 예루살렘 함락 및 성전 파괴를 기억하여 속히 민족의 영광을 되찾도록 기도할 것을 촉구하는 소리이다.
6 나팔은 아브라함이 이사악 대신 제헌한 양의 상징이다.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은 자 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제헌하기로 결정했고, 이사악 역시 자신이 제물임을 알고도 하느님의 의 (義)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성조들의 행위는 바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공로가 되어 매년 그 들이 심판받을 때 도움을 준다.
7 나팔 소리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8 나팔 소리는 최종 심판 일이 가까이 왔음을 일깨워 준다.
9 이스라엘의 유배 생활의 종식을 알린다.
10 나팔 소리는 또한 미래에 있을 부활을 알리는 소리이다. 이상 열거한 로쉬 하샤나 나팔 소리의 열 가지 의미는 단순한 나팔 소리의 의미를 넘어서서 로쉬 하샤나의 중요성, 그리고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을 이스라엘이 어떻게 보내는지를 알려 준다.
빠스카나 오순절 등의 축제가 과거에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도왔던 놀라운 사건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이라면, 로쉬 하샤나는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반성하는 축제라고 볼 수 있다.
심판이라는 의미를 통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부당하고 부족한 존재인가를 깨닫고 그분께 다다르기 위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시간 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느님이 자신들의 창조주임을 재확인하며 이 난이 얼마나 하느님께 의존되어 있는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느님과 화해하며 곧 뒤이어 있을 열흘간의 속죄의 날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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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속죄의 날, '얌 키퍼' 20120822미바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부활은 가장 커다란 축제이다. 그리고 그 부활을 참으로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매년 자신을 가다듬는 긴 시간을 가진다. 사순절이 바로 그 기간이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갈" 존재임을, 그리고 자신의 처절한 한계를 하느님 앞에 고백하며 엎드려 회개하는 것이 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화해하며 부활에로 나아간다. 이스라엘에게도 위의 사순절과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니는 축제가 있다. '얌 키퍼(Yom Kipper)- 속죄의 날'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축제 중 가장 엄숙한 날이다. 얌 키퍼 자체는 하루이지만 그 날을 보내기 위해 설날(로쉬 하샤나)로부터 열흘간 준비기간을 가진다. 얌 키퍼는 이스라엘력으로 칠월 십일인데 칠월 일일인 로쉬 하샤나로부터 얌 키퍼까지의 열흘 동안을 [10일간의 참회 기 간](Ten Days f Penitence)라고 부른다.
1. 얌 키퍼의 유래와 정신
레위 23,26-32에는 '죄 벗는 날'의 규정이 나온다. 이에 따르면 죄 벗는 날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로서 단식과 속죄의 제사 및 예식을 거행해야 하는 날로 규정되어 있다. 이 날은 이스라엘이 모든 축제 중 가장 엄숙한 날이며 이스라엘이 개인으로서나 국가적으로 죄를 씻고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이다. 얌 키퍼의 유래는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저질렀던 우상 숭배를 회개하며 모세가 전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두 번째 십계판을 갖고 내려오는데 그 날이 바로 첫 번째 얌 키퍼이다.
그 이후 이 날은 대대로 죄지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 날로 기념되어 왔다.
인간이 이미 지은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유다이즘의 근본이 되는 믿음이다. 인간은 다이나믹한 존재로서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악을 저질렀다고 해도 '속죄'를 통해 원래의 깨끗한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유다인들은 또한 인생을 일종의 사다리와 같은 것으로 본다.
인간은 그 사다리를 오를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다. 즉 인간이 처해 있는 그 어떤 상태도 결코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선과 악을 끊임없이 오가며 그에 따라 그의 영혼도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것이다.
속죄의 날, 얌 키퍼는 이러한 유다인들 의 생각에 한 차원을 더해 준다. 인간이 아무리 죄에 깊이 빠져있을지라도 그는 자신을 다시 위로 올릴 수 있다는 유다인들의 믿음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에 '속죄'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유다교의 독특한 특징은 속죄를 위한 특별한 날을 지정하고 그 날을 안식일 중의 안식일로 불렀다는 점이다. 얌 키퍼에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창조, 특히 인간 창조를 기억한다. 인간 창조는 하느님의 창조행위의 절정이다. 다른 모든 것들이 최후에 만들어진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귀한 존재인 자신들의 위치를 기억하며 이스라엘은 속죄를 통해 새로이 창조된다. 죄를 용서받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회개'이다.
회개의 중요성은 성서 전반에 걸쳐 자주 강조되며, 회개는 예언문학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
요나서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하느님이 인간의 회개를 받아들이신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회개의 가능성은 인간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열려져 있다. 성서는 반복해서 아무리 악인 중의 악인이 라도 그가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기만 한다면 하느님은 결코 그를 버리시지 않는다고 전한다.
진정한 의미의 회개는 다음의 세 가지 단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1) 과거에 대한 통회
2) 앞으로 다시는 그 죄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 그리고
3) 고백이다.
유다의 현자들은 진정한 회개의 요소를 이렇게 세 가지로 설명함과 동시에 어떤 사람이 회개하기 전과 거의 비슷한 죄의 상황 속 에 놓였을 때 자신의 회개를 절실히 기억하여 다시는 그 일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얌 키퍼를 지내며 이스라엘은 이러한 절차의 통회와 고백을 행하는데, 공적인 죄나 다른 사람들에게 지은 죄는 공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죄는 하느님 앞에서 개별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옛 현인들은 회개를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하였다.
첫째는 고통을 통한 회개이고 둘째는 두려움으로 인한 회개, 그리고 셋째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회개이다. 그들은 세 번째 종류의 회개를 가장 값진 회개로 여겼다. 회개는 죄를 씻게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의 영혼을 오히려 한층 더 높여 준다. 이스라엘은 한 번도 죄짓지 않은 성인보다 회개하는 죄인을 더 높이 여겼다. 죄를 통해서, 그리고 그 죄의 아픔과 그에 대한 절절한 후회와 참회를 통해 고양되는 영혼의 깊이를 그러한 겸험이 없는 성인은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전혀 죄짓 지 않은 사람은 인간 실존의 또 하나의 깊은 차원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것은 마치 어둠을 모르기에 빛이 얼마나 밝은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 어둠의 상처를 모르는 사람은 빛의 고마움을 결코 알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죄에 대한 후회와 회개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더 깊이 알게 하며 그것을 통해 속죄 받게 하는 것이다.
얌 키퍼는 이처럼 자신의 양심과 싸움을 벌여야 하는 날인 까닭에 모든 이스라엘인들에게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한 날이다. 그러면서 또 한편 이 날은 국가 전체의 차원에서 보아도 아주 의미 있는 날이다.
왜냐하면 얌 키퍼에 개인의 죄가 씻겨 질 뿐 아니라 전 민족의 죄, 그리고 국가의 죄가 씻겨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날 대사제는 성전에서 이스라엘 전 민족을 대표해서 속죄의 제사를 거행한다.
오늘날에도 얌 키퍼에 바쳐지고 있는 고백의 기도는 이런 이유에서 '우리'라는 복수형 주어로 되어 있다.
얌 키퍼는 이처럼 이스라엘이 회개를 통해 죄를 씻고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날이다.
그러므로 통회와 금욕에도 불구하고 결코 슬픈 날이 아니다. 그 분위기는 엄숙하지만 그 엄숙함은 이제 죄를 용서받는다는 확신에 가득찬 기쁨을 전제로 하고 있다.
속죄의 날, '얌 키퍼' 20120824미바회
2.의식과 관습
얌 키퍼는 성서에 "안식일 중의 안식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선 안식일에 적용되는 모든 규정이 얌 키퍼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얌 키퍼는 보통 안식일보다 훨씬 성스럽고 의미 깊은 날이다.
이 날 속죄의 제사가 봉헌되며 또한 여러 가지 예식과 더불어 금욕을 통해 정신적인 면 을 고양함으로써 속죄를 구하기 때문이다.
얌 키퍼의 관습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회 의식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다섯 가지 형태의 금욕이다.
이는 직접 인체의 기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로 인하여 얌 키퍼의 의미는 다른 안식일과 확연히 구분된다.
얌 키퍼는 오경에 네 번 나오는데, 레위기에 3번, 그리고 민수기에 1번 나온다.
그런데 얌 키퍼가 나오는 부분에는 매번 금욕이 명해져 있다. 게다가 이 명령을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이 명령은 스스로에게 육체적 고통을 가하고 이를 극기해야 하는 작업이 얌 키퍼 에 얻게 되는 속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성서는 이렇게 금욕을 강조하면서도
어떤 식의 금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스라엘 의 현인들은 이를 다섯 가지 형태의 육체적 욕망을 극기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즉 먹고 마시는 것, 씻고 목욕하는 것, 기름 바름, 부부관계, 그리고 가죽신을 신는 것을 삼가 하는 것이다.
특히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삼가 해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식이 생명에 위협을 줄 경우는 음식을 먹도록 규정했다. 즉 환자 자신이 단식을 원해도 의사가 식사를 해야 한다고 결정하면 환자는 단식을 할 수 없는 것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유다인들 지역에 콜레라가 퍼졌을 때, 랍비 살란터(Israel Salanter)는 회중에게 단식하지 말도록 명하고 그 본보기로 회중 앞에서 음식을 먹었다.
전염병이 퍼졌을 때 단식을 하면 몸의 저항력이 약해져서 감염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 이었다. 또한 어린이는 단식을 하지 않도록, 정해져 있다. 10세 정도가 되면 차차 단식의 의미를 배우게 하고 여자는 12세, 남자는 13세부터 단식을 시작한다.
성서에 단식은 여러 번 통회의 징표로 나타난다. 요나서에 보면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통회의 의미로 단식하는 것이 나온다.
또한 왕비 에스델이 법령을 어겨서라도 목숨을 걸고 아하스에로스왕을 만나러 가기로 결정했을 때 왕비와 당시 모든 유다인들은 사흘 간 단식을 하였다(에스4장 참조). 단식은 또한 인간의 영적인 면을 고양시켜 준다.
신체의 물질적 요건을 절제함으로써 정신을 좀 더 영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씻지 말라는 명령은 자신의 만족감과 편안함을 위해 얼굴을 씻거나 목욕을 하는 경우에만 적용 된다.
그래서 얌 키퍼에는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기 전 손가락만 씻는다. '기름 바름'이란 얼굴, 손 그리고 몸을 부드럽게 해주기 위해 크림이나 기름을 바르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손이나 얼굴에만 크림을 바르지만 옛날에는 목욕 후 몸 전체에 올리브기름을 바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름 바름을 삼가 하라는 명령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 금욕 규정 중에 가 장 중요한 것은 단식으로 그 밖의 네 가지 규정은 어기더라도 벌을 받지는 않았다.
얌 키퍼 예식의 핵심은 전야 예배와 얌 키퍼 당일에 드리는 속죄의 제사라고 할 수 있다.
얌 키퍼 전야 예배는 얌 키퍼 전날 초저녁부터 시작되어 해가 떠서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된다.
이 예식은 이스라엘 회중이 함께 회당에 모여 거행하며 기도문 낭독, 성서 봉독, 모든 서약 과 맹세가 무효임을 선언하는 찬송, 그리고 고백의 기도 등으로 구성된다. 얌 키퍼 전야 예배는 유다이즘의 모든 의식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데, 유다교를 믿지 않는 성당수의 유다인들까지도 이 의식에는 참여한다.
얌 키퍼 당일에 행해지는 의식의 핵심은 성전에서 거행되는 속죄의 제사이다.
원래 대사제는 자신이 원할 때는 언제나 제사를 지낼 수 있지만 얌 키퍼에는 의무적으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축제 전 칠일 간을 성전 안에서 지내며 거룩한 얌 키퍼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대사제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기도를 바치는 동안 사람들은 성전 앞마당에서 기 다리는데 그들은 대사제가 지성소 밖으로 나올 때까지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속죄의 제사 외에도 얌 키퍼에는 아침, 오후, 저녁 세 차례의 예배가 있다. 예배의 핵심은 기도 와 성서 봉독이다. 특히 이날에는 다른 경전과 함께 요나서를 봉독하는데 그것은 요나서의 메시지가 바로 회개와 속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얌 키퍼는 회개의 날이며 잃어버린 자신의 영혼을 되찾는 날이다. 결국 얌 키퍼의 모든 의식과 관습의 궁극 목적은 바로 속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장엄함과 엄숙함에도 불구하고 로쉬 하샤나처럼 얌 키퍼도 역시 축제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인간의 회개를 받아들이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불신과 우상 숭배 즉 죄와 파멸, 그리고 회개와 하느님의 용서라는 싸이클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역사는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얌 키퍼를 통해 죄를 씻고 하느님과 화해하고자 한 이스라엘의 모습은 아픔과 실수, 범죄, 그리고 벌과 용서, 새로운 하느님과의 관계를 체험하며 그분께 다시 매달리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다.
이처럼 얌 키퍼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이스라엘의 축제이다.
그리고 또한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단식하며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는 사순절의 의미를 묵상하게 한다.
유대인의 축제
4) 해방과 구원의 축제, 파스카 20120827성경자료실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축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준다. 그 중에서도 파스카는 예수 그리스도가 맺은 새 계약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축제이다. 예수는 돌아가시기 전 파스카를 지내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복음서마다 기록하고 있는 최후의 만찬은 바로 파스카 식사였으며, 그 만찬을 통해 부여한 새 계약의 의미로 인하여 그 식사는 미사성제의 원형이 되었다.
그리고 파스카 제물로 바쳐지는 흠 없는 어린 양처럼 예수 는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가톨릭교회에서는 죽음을 통해 생명으로 가는 파스카의 신비를 성찬식 때마다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부활전야 예식 역시 파스카의 의미를 담은 전례이다. 이처럼 신약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파스카 축제는 이스라엘의 3대 축제 중의 하나로서 유다 역사 상 가장 중요하고 또 극적인 사건-출애굽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매해 봄 이스라엘력 니산달 15일 부터 칠 일간 지내는 이 출애굽 기념축제는 유다의 축제 중 가장 오래된 축제이며 전 민족의 축제 이자 또한 가족 축제이다. 그리고 수천 년간 이스라엘을 결속시켜 온 신앙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1. 유래와 정신
출애 12,1-14에는 파스카 축제의 유래가 밝혀져 있다. 그것은 야훼가 에집트에서 모세와 아론에 게 지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내용인즉 가족단위로 흠 없는 새끼 양을 준비했다가 14일, 해질 무렵에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여 도살한 뒤 그 피를 받아서 그것을 먹을 집의 문설주와 문상인 방에 바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가족이 모여 누룩 없는 빵과 쓴 풀과 함께 그 고기를 먹으라고 명한다. 그러한 예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그날 밤 나는 에집트 땅을 지나가면서 전국에 있는 맏아들을 사람이건 짐승이건 모조리 치리라. 또 에집트의 신들과 모조리 심판하리라. 나는 야훼다. 집에 피가 묻어 있으면 그것이 너희가 있는 집이라는 표가 되리라. 나는 에집트 땅을 칠 때에 그 피를 보고 너희를 죽이지 않고 넘어가겠다. 너희가 재앙을 피하여 살리라. 이 날이야말로 너희가 기념해야 할 날이니 너희는 이 날을 야훼께 올리는 축제일로 삼아 대대로 길이 지키도록 하여라.
파스카(Pascha, 과월절 또는 유월절)라는 말은 예수시대에 유다인들의 일상어였던 아라메아어의 그리이스어식 표기인데 '거르고 넘어 간다'는 뜻의 히브리어 '빼사흐(P둺ah)'에서 유래되었다. 이것 은 이스라엘을 결코 놓아주려 하지 않는 완고한 파라오에게 내리는 열 번째 재앙으로, 야훼께서 에집트의 맏아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실 때 흠 없는 어린 양의 피로 이스라엘 맏아들의 생명을 대 신하여 그들의 집을 거르고 지나가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더 확대되어 이스라엘이 극적으로 갈대바다를 건너 에집트를 탈출한 사건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출애굽 사건 이전에도 유다인들은 그 기간에 축제를 지냈었다. 누룩 안 든 빵을 먹고 양을 도살 하여 제사지내는 전통적인 '봄의 축제'였는데 양의 도살이 예식의 중심이었다. 모세가 문설주에 바르라고 지시한 양의 피는 바로 그 축제 때 도살되는 양의 피를 의미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출애굽'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체험한 후 기존의 그 축제에 야훼께서 이스라엘의 생명을 구하시고 그들을 에집트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킨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받아 들였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상 유다이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하느님이 직접 개입하시고 그 결과 자유를 얻은 이 사건은 이스라엘 신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 고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사로잡힌 그들은 이 특별한 축제를 통해 그 사건을 기념하고 대대로 자 손에게 그 의미를 전했다. 유다인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생명을 걸고서라도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있 건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에집트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중세 때 그리스도인이 유다인들을 미워해서 박해하던 때에도 파스카를 지켰고, 2차 대전 중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조차 조그만 빵으로 파스카 식사-세다 예식-을 거행하였다. 갇혀 있는 그 상황에서도 유다인들은 그들 조상들이 어떻게 해방되었는가를 기억한 것이다. 그리고 출애굽 이 야기를 자손들에게 전했다. 파스카는 시대를 초월해서 유다이즘에, 그리고 그리스도 교회에까지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해 주 고 있다.
첫째, 파스카는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에 개입하고 계심을 알려 준다. 성서가 전하는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분이시다. 이는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아닌 세계 역사의 원동력으로서의 하느님의 모습이 분명히 드러난 사건이 바로 출애굽 사건이다. 그래서 모세가 첫 번째 십계 판을 받을 때 야훼는 자신을 "하늘과 땅을 창조한 하느님이다"라고 소개하지 않고 '너희를 에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 "라고 소개한다. 이 말로써 성서 저자는 하느님이 인간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신다는 사실을 강조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파스카는 모든 종류의 자유를 상징하며, 하느님이 얼마나 인간의 자유를 원하시는가를 알려 준다. 동시에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자유를 향해 발을 내딛을 것을 촉구한 다. 자유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합리주의자에게 있어서의 자유란 인간이 합리적 본성대로 사는 것이 될 것이다. 에리히 프롬(E. Fromm)은 사랑이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요소라 고 말했다. 그것을 통해서만이 인간이 분리 감을 극복하고 자기중심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랍비들은 인간이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 분을 따르는 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내적(內的) 자유를 얻기 위해 인간은 타인에게 예속되어져서는 안된다.
이스라엘이 에집트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난 후에야 시나이에서 십계가 주어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노예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자유로운 정신과 영혼으로 십계를 받기 위해 49일을 보내야 했다. 이처럼 인간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출애굽의 주요 메시지다. 그리고 그 메시지에는 타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파스카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자유를 기념하는 축제이다.
출애굽을 통해 그들은 독립국가로 발돋움했다. 그 이후 바빌론 유배, 로마 통치 등 숱한 시련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자유로운 민족정신을 잃지 않았다. 외국을 떠돌아다니며 천대와 박해를 받던 그 오랜 기간 동안 유다 인들은 결코 구원에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파스카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금년에는 우리가 여기 있지만 내년에는 우리가 이스라엘에 있을 것이다. 금년에는 우리가 노예이지만 내년 에는 우리가 자유인이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파스카는 단지 지나간 역사적 사실의 기념 이상의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미래에 있을 '구원'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게 하며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위해 지금 그것 을 방해하는 사슬을 끓을 것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축제
4) 해방과 구원의 축제, 파스카2 20120829성경자료실
2.의식과 관습
(1) 과월절 식사 준비
과월절을 시작하는 첫날 의식을 유다인들은 '세다(Seder)의식'이라 부른다. 이 의식에 필요한 준비물은 일상적인 음식 이외에 다음과 같은 특별한 음식이 추가된다.
ⓛ 누룩 만든 빵(맛짜, Mazzah) : 과월절 기간 동안은 누룩이 전혀 들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하기에, 오늘날 유다인들은 정부가 감독하여 보증하는 누룩 안 든 빵-코쉐 파스카만을 먹는다.
② 정강이뼈 : 보통 양이나 소의 정강이뼈를 굽든지 끓이든지 해서 내놓는다. 이 뼈는 통째로 굽는 과월절 희생제가 더 이상 바쳐지고 있지 않음을 상정한다.
③ 달걀 : 식사 시작 시에 소금물에 찍어서 먹는 달걀은 성전이 파괴되어 과월절 희생제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음을 기억케 한다.
④ 쓴 나물 : 이 나물은 에집트에서 고생했던 과거의 괴로움과 쓰라림을 기억케하며, 나아가 현재의 쓰라림과 달콤함을 구별하고 미래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상징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쓰라린 상처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⑤ 하로[(Daroset) : 과일, 양념, 붉은 포도주, 누룩 안 든 빵으로 만든 크림 비슷한 것으로, 쓴 풀을 찍어 먹을 때 사용한다. 하로[의 붉은 색깔은 에집트에서 진흙으로 벽돌을 빚어 만들며 고생했던 것을 상징한다.
⑥ 카르파스(Karpas) : 감자, 홍당무, 샐러리, 파세리 등의 채소들로 식사 전에 입맛을 돋구는 데 쓰인다.
⑦ 양상치(Dazertet)
⑧ 소금물 : 에집트에서 이스라엘인들이 흘린 눈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채소나 달걀을 찍어먹는 데 쓰인다.
⑨ 포도주 : 과월절 식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네 잔의 포도주를 마셔야 할 의무가 있다. 각 잔은 적어도 0.137리터 이상 채워야 한다.
⑩ 엘리야의 잔 : 또한 셋째 잔과 넷째 잔 사이에 잔을 하나 채워, 유다인들이 메시아의 오심을 알리고 자신들을 고난에서 건져주리라고 믿고 있는 엘리야 예언자를 기억한다. 이 의식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다.
파스카 예식은 이스라엘 축제 중 가장 복잡하다. 준비과정도 길고 요구되는 내용도 까다로우며 또 관습이나 의식이 다른 축제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식단도 완전히 다르고 그릇도 특별히 그 날만을 위해 준비된 세다 접시를 사용한다. 이것은 모두 출애굽 사건을 좀 더 잘 기억하고 그 의미를 더 잘 되새기기 위함이다.
그 여러 가지 의식과 관습 중에서 핵심적인 것을 뽑아보면
1) 성전파괴 이전까지 파스카 축제의 핵심이었던 파스카 양의 희생과
2) 성전파괴 이후 파스카 축제의 중심이 된 세다 예식(파스카 식사)을 들 수 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던 시절에 파스카 예식의 중심은 파스카 희생이었다. 에집트에서 거행되었던 첫 번째 파스카 만찬을 기념하는 바로 그날 밤에 모든 유다 집안은 양이나 염소의 새끼를 희생 제물로 잡고 축제를 지냈다. 다른 때에는 개별 적으로 성전에 제물을 바치는데, 그에 반해 파스카 희생은 보통 가족단위로 바쳐졌다. 만약 식구 수가 적어 양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없으면 이웃과 함께 바쳤다. 이방인과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이 공동체에서 제외되었다.
파스카 전날, 즉 니산 달 14일 정오부터 사람들은 줄을 지어 도살할 파스카 희생제물을 끌고 성전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 세 차례에 걸쳐 도살을 하였다. 첫 번째 그룹이 성전 마당에 가득차면 출입문들을 닫고 뿔 나팔을 분다. 그때 사람들은 각자 자기들 의 희생제물을 도살한다. 그 제물의 피를 받기 위해 사제들은 맨 앞줄의 사람들에게 금이나 은대 접을 건네주어 돌리게 한다. 그 그릇들에 받아진 피를 가까이에 있는 사제가 받아서 주변의 바닥 에 뿌린다. 예식이 거행되는 동안 레위인들은 할렐(Hallel : 시편113-118편)을 노래하며, 이 과정 이 세 번째 그룹까지 반복된다. 그후 희생제물을 불에 굽는데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성서규정 대로 뼈가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준비된 제물을 땅거미가 진 후 온 가족이 함께 먹는다. 파스카 희생제물을 먹는 그 파스카 식사 때 유다인들은 출애굽을 기억하며 그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룩 안든 빵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성전에서 파스카 희생제물을 바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논란이 있었으나 랍비들은 성전 쪽을 향해 기도하고 누 룩 안 든 빵을 먹을 것과 파스카 식사 같은 기타의 예식을 계속 거행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파스카는 '누룩 안 든 빵'의 축일로 계속 지켜졌으며(유다인들은 그 기간 동안 누룩 든 빵 음식을 일체 먹지 않았다)
첫 째 날 밤의 파스카 식사-세다 예식-가 축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파스카 축제기간 동안 일체 누룩이 없어야하므로 음식에 누룩을 넣지 않음은 물론 그 기간이 시 작되기 전 유다인들은 온 집안을 청소하여 집안 구석구석의 누룩(곰팡이)까지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이때의 누룩은 인간의 악한 경향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외부로 드러나는 누룩 제거 작업은 파스카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고 회개하며 새롭게 함을 표상한다.
세다 예식은 파스카 축제 첫날 밤 땅거미가 진 후 특별히 준비된 식탁에 둘러앉아 하는 가족식사이다. 이 식사는 잘 짜여진 순서에 의해 또한 어린이들을 위해 재미있게 진행되며 누룩 안 든 방, 쓴 풀, 통째로 구운 양이나 염소고기 등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다. 식사는 앉아서 하지 않고 비스듬히 왼쪽으로 누워서 하는데, 이는 고대 로마 시대의 자유인의 식사법으로서 자유인임을 재확인하는 의미이다. 쓴 풀을 먹는 것은 에집트에서의 쓰라림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과거의 쓰라림을 기억함으로써 이스라엘은 타인의 고통을 돌보아야 함을 인식하고 또한 자신들이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세다 예식의 절정은 하가다(Haggadh)라고 하는 출애굽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다. 자녀들에게 출애굽 이야기를 전해 주는 것은 유다인들의 종교적 의무였고 이는 파스카 식사 때 이루어졌다. 그래서 파스카는 이야기의 축제라고도 불리워진다.
가장과 자녀들이 나누는 출애굽에 관한 대화가 점차 자리가 잡혀지자 그 대화를 위한 텍스트가 만들어졌는데, 그 텍스트를 '하가다'라고 부르며 예식 때 그것을 읽는다. '하가다'는 '설명'이란 뜻의 단어로 텍스트뿐 아니라 그 대화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하가다 텍스트에는 긴긴 이스라엘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출애굽 이야기가 그 정점을 이룬다. 여기에는 또한 어린이들이 가장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오늘밤은 다른 모든 밤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묻는 4가지 질문도 수록되어 있다. 다른 날과는 다른 식단과 식 사방법의 이유를 묻는 것은 출애굽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함이다.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우 리는 에집트에서 파라오의 노예였었다. 만일 하느님이 우리 조상들을 구원하시지 않았다면 우리 는 아직도 노예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 밤이 다른 밤과 다른 이유이다." 이 기 억을 통해 이스라엘은 어려움 속에서도 미래에의 희망을 지니며 살아온 것이다.
파스카는 이처럼 의미 깊은 이스라엘의 축제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파스카식사 때 새 계약을 세우시며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심으로써 구원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부활로 가는 여 정을 몸소 행하셨다. 유목 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유다인들의 봄의 축제가 출애굽 사건으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 듯이, 파스카는 이제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을 지나 부활로 가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를 얽어매는 사슬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것을 끓어버릴 것을 촉구하며 그 해방을 하느님께서 친히 도우실 것을 약속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유대인의 축제
5) 오순절(성령강림 대축일)20120831성경자료실
비록 파스카만큼 신약의 사건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파스카 외에 신약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이스라엘 축제는 오순절이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이 되어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는데 그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다고 나와 있다. 즉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약속하셨던 성령의 강림이 이스라엘의 전통 축제인 오순절에 일어난 것이다. 과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라 하여 펜테코스트(Pentecost)라고도 불리 우는 오순절은 고대 이스라엘부터 계속되어 온 추수 감사절이다.
원래는 지방마다 따로 축제를 거행했지만 성전시대 이후 중앙 성전에 모여 일시에 지내게 되면서 순례축제가 되었다. 원래 고대 농경사회에는 추수한 첫 곡식을 신(神)에게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가나안에 정착한 히브리인들은 가나안 농경사회의 그러한 영향을 받아 갖가지 곡식을 추수할 때마다 추수 감사절 을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과월절 때 보릿단을 바치는 관습이 정착되면서 그로부터 50일 후 밀을 수확하는 시기에 오순절을 지내게 되었다.
오순절에 관한 규정은 레위기 23장에 나온다. 보리 곡식 단을 바친 날로부터 만 일곱 주간을 보내고 오십 일째 되는 날 새로운 곡식예물-밀로 만든 빵을 바치라는 것이다. 오순절의 성격은 추수를 감사드리는 것이므로 누룩 없는 빵을 바치는 과월절과는 달리 누룩을 넣어서 빵을 굽는다.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랍비 시대 때 오순절의 의미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출애 19,1에는 이스라엘이 에집트 땅에서 나온 지 석달째 되는 초하룻날, 시나이 광야에 이르러 하느님의 율법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구절에 따라 오순절은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은 사건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축제변천사에서 계절에 맞는 단순한 농경축제가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적 의미를 띠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되는데, 파스카도 그 한 예고 오순절 역시 그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오순절은 바리사이파가 율법을 받은 사건을 특히 강조함으로 추수감사의 의미가 약화되었다. 중세 때는 어린이들을 오순절에 처음으로 회당에 보내 토라를 배우게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 관습 역시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은 사건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행해졌다.
파스카와는 달리 오순절에는 그다지 특별한 의식이 없다. 그 이유는 성전파괴 때까지 오순절은 단순한 추수 감사절이지 그 이상의 아무런 성서적 의미를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율법을 받은 사건을 기념하면서 추수 감사예절조차 점차 퇴색해서 더더욱 예식 면에서는 빈약해졌다. 성전파괴 이전에 거행되던 오순절 예절의 중심은 새로 구운 빵과 함께 번제 제물, 속죄 제물, 그리 고 감사 제물을 봉헌하는 것이었다. 행렬을 하면서 성가를 부르고 시편을 읊는데 이에 대해 사제가 강복을 하였다. 성전파괴 이후에는 오순절 예식의 중심이 회당에 모여 토라를 읽는 것이 되었다. 특히 십계명을 봉독하고 그 외에 룻기를 읽었다. 룻기를 읽는 이유는 첫째, 룻기에 기록된 사건이 추수시기에 일어났고(룻기 2, 23 참조) 둘째, 다윗의 조상인 룻이 유다이즘으로 개종한 사 건 때문에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그날 룻기를 읽는 것이 적합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룻의 충절은 이스라엘의 율법에 대한 충절을 상징한다. 현대에 와서 키부츠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인들이 전통적인 옛 추수 감사예절을 다시 소생시키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
오순절에는 또한 회당을 여러 가지 녹색식물과 꽃으로 장식하는 풍습이 있다. 그것은 시나이 산이 푸른 산이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 때문에 그 푸르름을 재현하기 위해서이다.
가정 안에서의 관습으로는 우유로 만든 제품을 먹는 것을 들 수 있다. 오순절에 우유를 먹는 까닭은 율법이 어떤 의미에서 매일 마시고 사는 우유에 비교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삼각형으로 생긴 납작한 케이크를 구워 먹는데, 구울 때 그 안에 고기나 치즈를 밀어 넣어 굽는다. 그 이유는 율법이 세 부분-오경, 예언서, 성문서-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그 세 가지를 삼각형의 케이크 모양을 통해 기억하기 위함이다. 삼각형은 또한 율법이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주어졌음을 상기시킨다. 제사장들, 레위 지파 사람들, 그리고 나머지 이스라엘인들이 바로 그들이 다. 그 외에도 셋째 아들로 태어났던 모세를 기억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축제는 이스라엘인들의 삶의 주요 부분이다. 그들은 계절의 변화, 역사적 사건, 그리고 생활의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야훼의 존재를 느끼며 축제를 통해서 공동체가 함께 그 마음을 나누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특정 축제의 의미는 새로운 사건이나 발견과 접하면서 변천해 왔다. 오순절도 바로 그러한 축제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약의 축제가 그리스도 사건과 연관되어져 새로운 의미로 오늘에 전해지고 있음은 비록 필연적 연관성은 없다 하더라도 하나의 신비라 할 수 있다. 유다인들이 출애굽을 기념하여 추수 감사절을 지내는 그 기간에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하느님께 이르도록 도와주는 성령의 강림을 기념하게 된 것이다.
오순절(성령강림 대축일)
구약의 삼대축제는 유월절(파스카), 초막절 그리고 오순절이다.
가장 큰 축제는 물론 유월절이다.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축제로 봄의 파종시기와 맞물려 민족 전체가 움직인다.
오순절은 파스카 축일부터 오십일 뒤에 열리는 또 다른 축제다.
그러니까 오순 즉 오십일의 시작은 파스카 축일임을 알 수 있다.
오순절 축일은 대개 5월 말이나 6월 초에 해당된다.
이때는 밀 수확이 대부분 끝난 시기다.
따라서 풍작에 대한 감사축제가 오순절의 기원이다.
이런 이유로 개신교에서는 '맥추절'로 부르기도 한다(탈출 23.16).
글자 그대로 '밀 추수 축제'란 뜻이다.
가톨릭에서는 '수확절'로 번역했다.
후대로 오면서 유다인들은 오순절의 의미를 모세와 연관시켰다.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날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리하여 율법을 내려주심에 감사하는 축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오랜 망명생활로 밀농사 보다 다른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오순절을 성령강림과 연관시켰다.
주님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
성령께서 오셨기에 이를 기념하는 축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아무튼 오순절의 어원은 희랍어 펜텐코스테pentecoste로 '50번째 날'을 뜻한다.
칠일이 일곱 번 겹치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미 있는 날'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불교와 유교에서도 사람이 죽고 49일째 되는 날에는 성대한 제를 올렸다.
49제의 기원이다.
그런 뜻에서 개신교는 '칠칠절'이란 용어를 사용했고(탈출기 34.22) 가톨릭은 '주간절'로 번역했다.
따라서 맥추절, 수확절, 칠칠절, 주간절은 모두 오순절의 또 다른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오순절에 대한 기록은 레위기에 처음 등장한다(레위 23.15-16).
너희는 곡식 단을 흔들어 바친 날부터 일곱 주간을 헤아려라.
이렇게 오십일을 헤아린 뒤 새로운 곡식 제물을 주님께 바쳐라."
유다인들은 이 기록에 따라 오순절을 지켰던 것이다.
'흔들어 바치는 예물'은 제사장을 통해 주님께 봉헌하는 첫 수확물을 뜻한다.
기독교의 오순절은 언제부터 지켰는지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2세기 문헌인 '사도들의 편지'에 오순절에 관한 기록이 있다.
박해 속에서도 지켜지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초대교회는 부활주일에 세례를 베풀었고 새 교우와 함께 오순절을 시작했었다.
<신은근 바오로 신부>
<유대인의 축제>20120902성경자료실
6) 오메르- 햇곡식을 바치는 축절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축제에도 크고 중요한 것이 있는가 하면 작고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이 있다. 초실절(Omer)이 바로 후자에 속하는 작은 축제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가치가 없는 축제란 의미는 아니다. 이는 마치 신문에 이름이 나오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한 사람만이 살 가치가 있고 풀처럼 이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가치 없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작지만 그 나름대로 이스라엘 사람들 의 생활 안에서 삶의 리듬을 주는 축제 중의 하나가 초실절이다. 레위 23,9-14에 초실절(햇곡식을 바치는 축절)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줄 땅으로 들어가서 추수를 하거든 추수한 첫 곡식 단을 사제에게 바쳐라. 그러면 사제는 그 곡식 단을 야훼 앞에 흔들어 바쳐야 한다. …사제는 안식일 다음날에 그것을 흔들어 바쳐야 한다." 그와 함께 흠 없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치고 기타, 다른 곡식 예물을 함께 바치라는 규정이 나온다.
이 성서구절에 의하면 초실절은 야훼께 추수한 첫 곡식을 바치는 축일이다. 오순절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고대 농경사회에는 추수한 첫 곡식을 신에게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히브리인들은 그들 이 거주하게 된 가나안 지방의 관습에 영향 받아 추수 감사절을 지냈는데, 처음에는 그 날짜가 농작물의 추수시기에 따라 일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메르는 보릿단을 바치는 축일로, 오순절은 밀을 봉헌하는 축제로 정착되었다.
보릿단을 바치는 축일 오메르는 니산달 16일로 과월절 기간 중이다. "안식일 다음날"이라는 성서 구절 때문에 날짜를 정하는데 오랫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다가 레위 23장에서 말하는 안식일이 주간 샵밭이기보다는 "거룩한 날", 즉 파스카 첫날이라는 의견이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니산달 16일이 오메르로 결정되었다.
가장 중요한 오메르의 의식은 성서에도 규정되었듯이 성전에서의 보릿단 봉헌이다. 보리가 익으면 예루살렘 인근 지역으로부터 필요한 보리가 예루살렘으로 운반된다. 만일 여의치 않으면 이스라엘 내의 다른 지역에서 운반될 수도 있다. 수확은 세 사람이 함께 각자 낫과 바구니를 갖고 한다. 그렇게 해서 수확된 보릿단이 성전으로 운반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키질을 하고 갈고 또 체로 친다. 그리고 그 중 십분의 일을 사제에게 가져간다. 사제는 거기에 기름과 향을 뿌려 제물 로 바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러한 준비는 야훼를 기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는 성서 규정대로 그 제물을 야훼 앞에서 흔들어 봉헌한다. 이 의식은 하느님께 대한 기도이다. 우선은 수확 을 가능케 하심을 감사하는 것이고 또 한편 늘 자신들을 보호하시어 바람이나 기타 재앙으로 인해 곡식을 추수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달라는 간청인 것이다. 제단에서 사제가 흔들어 봉헌하는 예절을 끝낸 뒤에는 한 줌의 곡식 단을 번제로 불사르고 나머지는 사제들이 먹는다.
언제부터인지 분명치 않으나 이 오메르에 보릿단의 봉헌 이외에 애도의 의미가 포함되게 되었다. 몇 가지 분명치 않은 유래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이야기는 랍비 아키바의 제자들의 죽음에 관계된 것이다. 랍비 아키바의 제자들은 보리 추수시기에 전염병으로 몰살당했는데, 그들 이 그렇게 죽임을 당한 이유는 서로를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러한 이야기와 연관되어 8세기에 처음으로 오메르에 애도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 기록되었다.
20세기에 와서 도대체 왜 랍비 아키바의 제자들이 죽은 것을 오메르에 애도해야 하는지의 문제 가 제기되었는데, 특히 엘리아잘 레비(Eliezer Levi)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였다. 그는 그들이 서로 존경하지 않고 그릇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 벌로 죽음의 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였다. 그 대신 그는 탈무드 전승이 그들의 몰사로 전하는 것은 그들의 단결력과 헌신을 칭송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메르에 담겨지게 된 애도의 분명한 유래를 밝히기는 어렵 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우연한 기회에 오메르에 애도의 의미가 담겨졌고, 그리하여 오메르는 곡식을 봉헌하는 날일 뿐 아니라 경건하고 엄숙한 날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애도의 날이기도 한 오메르는 결혼을 하는 것이 금지되고 머리를 자를 수 없다. 악기 또한 연주할 수 없다. 13세기 이후에는 애도의 대상에 오메르 기간 중 십자군 전쟁으로 희생당한 이스라엘인들이 포함되었다.
초실절 오메르는 이처럼 이스라엘이 야훼께 그들의 첫 보리수확을 감사하며 봉헌하는 축일이 다. 그리고 그들의 전통대로 그 축일은 세월이 흐르며 새로운 사건과 함께 새로운 의미-즉 애도 의 의미-도 지니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관습, 그리고 그들의 축제 여러 곳에서 항상 드러나는 것 은 바로 이러한 일상에서의 야훼께 대한 감사와 기도, 그리고 새로운 사건에 대한 민감한 수용이다. 오메르는 비록 작은 규모이나 어느 큰 축제 못지않게 야훼와 이스라엘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축제이다.
<유대인의 축제> 20120904성경자료실
7) 티샤 베아브-성전 파괴 기념일
개인이나 공동체가 고통스럽고 슬픈 과거의 일을 기억함은 어려운 작업이다. 역사상 일어난 여러 가지 일 중 어떤 일은 기억하기가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그리고 망각하는 쪽이 훨씬 편안하기 에 가능한 한 덮어두려고 한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고 아픔을 기억하는 작업은 삶의 지혜와 미래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부여해 준다.
이스라엘은 과거의 영광과 환희뿐 아니라 민족적 고통까지도 축제를 통해 기억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민족적 슬픔을 기억하는 날이기에 축제라기보다는 기념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한 날 중의 하나가 바로 티샤 베아브(Tishah be-Av)이다.
티샤 베아브는 이스라엘력 아브 달(Av:현대력 7-8월) 9일(Tishah)로, 두 차례나 있었던 이스라엘의 성전파괴를 기억하며 슬퍼하는 날이다. 솔로몬이 건립한 첫 번째 성전은 기원전 586년 아브 달 10일에 바빌론에 의하여 파괴되었다.(예레 52,12 참조). 2열왕 25,8-9에는 아브 달 7일에 성 전이 파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차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7일부터 성의 바깥벽이 파괴되기 시작하여 9일에는 성전 본 건물이, 10일에는 모든 것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랍비들은 가장 큰 재난이 9일에 시작되었으므로 9일을 '재난의 날'로 보았다. 탈무드 전승에 의하면 두 번 째 성전은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도 아브 달 9일이었다. 그리하여 아브 달 9일이 성전파괴 기념일이 된 것이다. 미슈나에 의하면 아브 달 9일은 수차례에 걸친 성전 파괴 이외에도 또 다른 역사적 재난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에집트를 탈출 한 이스라엘 후손들이 약속된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선고를 받은 사건이다.
이렇게 해서 아브 달 9일은 유다인들이 겪었던 여러 가지 박해 및 불행을 상징하는 날, 국가의 독립을 잃고 망명 생활에 들어간 사건을 슬퍼하는 날이 되었다.
티샤 베아브의 의식 및 관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는 개인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 금욕을 통해 슬픔을 기억하고 표현하는 것이고 둘째는 공동체가 함께 바치는 회당의식이다.
티샤 베아브는 단식을 하는 날이다. 음식과 마실 것을 일체 피하고 목욕을 하지 않는다. 기름 이나 향수를 몸에 바르지 않으며 가죽신을 신지 않는다. 일을 하지도 않고 부부관계도 피한다. 이날 밤에 신심깊은 사람들은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마룻바닥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기도 한다.
회당에서는 다른 날과는 다른 의식을 통해 민족공동체의 슬픔을 표현한다. 촛불을 희미하게 밝 히거나 회합 직후 불을 완전히 꺼버림으로써 이스라엘이 직면했던 그 암흑을 기억한다. 회당 안에 검은 휘장을 치고, 회중들은 바닥에 앉아 구슬픈 어조로 기도한다. 기도문과 함께 파스카 때 식탁에서 하는 네 가지 질문이 회중들에게 던져진다. "왜 오늘밤은 다른 날과 다른가?" "왜 파스카 밤에 우리는 누룩 안 든 빵과 쓴 풀을 먹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이다. 이 날 이스라엘은 성전파괴를 아파하며 자신들이 겪었던 그 외의 여러 가지 민족적 수난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맥락 안에서 성전 파괴를 재음미한다. 경우에 따라 이마에 재를 뿌리거나 통곡의 벽을 찾아가 애가를 읊기도 한다.
오늘날에 와서도 이날에는 회당 의식 및 기타 개인적 예식이 계속될 뿐 아니라 오락장소 등은 문을 닫고 신문이나 방송은 오락적인 기사 및 방송을 피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옛 모습을 조명하는 기사와 방송을 내보낸다. 인간 개개인과 공동체에게 과거란 소중한 것이다. 그것이 기쁜 추억이든 고통스러운 경험이든 그 과거를 배제하면 현재도 미래도 의미를 상실한다.
이스라엘은 특히 자신들의 과거의 경험을 소중히 여긴 민족이다. 그들은 고통의 기억조차 끊임 없이 현재 속에서 되새기며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성전 파괴라는 민족의 수치이자 고통 을 기억하고자 한 티샤 베아브는 결국 그러한 이스라엘의 의지를 보여주는 기념일인 것이다.
<유대인의 축제>20120906성경자료실
8) 투 비스밧-나무들의 설날
축제나 기념일 중에는 설날이나 독립기념일처럼 나라와 민족을 넘어서서 그 의미를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또 한편, 그 문화권 안에 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의미를 지닌 축제도 있다. 우리나라의 음력 정월 대보름 같은 명절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1년간을 재앙없이 지내며 복을 받기 위해 그날에 행하는 여러 가지 관습을 서양 사람들 은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무들의 설날'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의 소축제 투 비스밧도 그처럼 조금은 이상스럽게 여겨지는 이스라엘의 생활축제이다.
투 비스밧(Tu Bi-Shevat)은 스밧달(양력 1-2월) 15일이란 뜻으로 '나무들의 설날'이라고 불리운 다.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리고 여름은 건조하다. 조금씩 그 유래에 관한 견해 가 다르지만 탈무드는 스밧달 15일이 나무들의 설날이 된 것이 바로 이 비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스라엘에서는 1년 강우량의 대부분이 스밧달 15일 전에 내리므로 이날이 지나야 나무들에 물이 오르며 새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날이 인간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나무들의 설날로 정해졌고 구약시대에는 이날 그 해에 사제에게 바칠 십일조를 정했다.
처음엔 단순히 나무들의 새로운 탄생을 기억하고 기뻐하는 날이었던 투 비스밧에 중세 때 '과실 축제(The Feast of Fruits)'의 의미가 덧붙여지면서 그날 이스라엘 땅에서 나는 각종 열매를 먹는 풍습이 생겼다. 그리고 그 풍습은 이스라엘이 세계 각지를 유랑하던 시절에 유다인들과 그 들이 돌아가야 할 옛 이스라엘 땅과의 유대감을 형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거룩한 땅'에서 나는 열매를 먹으며 유다인들은 그 땅이 아직 살아 있음을 기억하고 곧 회복되리라는 믿음을 확인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19세기 말 이후 유다인들이 팔레스티나에 정착하면서 구체화되었고, 정착촌의 지도자들은 투 비스밧에 새로운 의미-사막을 정복함으로써 땅의 회복과 부흥을 상징하는 날-를 첨가시켰다. 그에 따라 새로운 춤과 노래가 만들어지고, 가장 먼저 열매를 맺는 아몬드 나무가 그 축일의 상징으로 정해졌다.
투 비스밧에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나무와 자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다. 이러한 관심은 중세 때는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표현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나무를 심는 조림 사업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중세 때 신비주의자들은 나무와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느끼며, 투 비스밧에 파스카의 세다 예식 에서처럼 4잔 의 포도주를 마시는 예식이 생겨났다. 4잔 의 포도주는 각각 4계절을 상징하는 것으로, 제일 처음과 제일 나중에는 흰색과 붉은색의 포도주를 마시고, 가운데 두 번은 그 두 가지 색을 조금씩 다르게 배합하여 자연의 변화를 상징하고자 했다.
정착 이후에는 나무 및 자연에 대한 애정이 조림사업을 통해 표현되었다. 투 비스밧에 어린이 들은 수업을 하지 않고 묘목을 심으며, 외국에 사는 유다인들은 '나무증권'이란 것을 구입함으로 써 조림사업에 자금지원을 했다.
그런데 자연자원, 특히 나무에 대한 관심은 현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유다의 전통이라고 한다. 랍비들의 가르침과 그 외의 이스라엘 옛 문헌에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생태계 원칙'이 자주 언급되어 있으며,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Zakkai)는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다. "손에 묘목을 들고 심으려고 할 때 누군가가 '메시아가 저기 온다.'고 외치거든 먼저 그 나무를 심고, 그러고 나서 그 분을 맞으러 가라."
각종 열매를 먹고 4잔 의 포도주를 마시는 가정의 식탁예절과 나무를 심는 것 외엔 투 비스밧의 특별한 예식은 없다. 다만 식탁에서 이 날, 자연에 대한 하느님의 권능을 찬양하는 시편 104편과 "성도(聖都)로 오르며 부르는 노래"120-134편을 노래한다.
투 비스밧은 이처럼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지닌 유다의 다른 축제와는 구별된다. 처음에는 나무들의 새로운 탄생을 보며 그 해에 내야 하는 십일조를 정하는 날이었던 나무들의 설날은 시간 이 흐르며 점차 그 의미가 변화되어 오늘날엔 나무 그 자체에 관심을 갖는 날이 되었다. 자연파 괴에 대한 두려움과 생태계 회복에 대한 염원이 점점 커져가는 오늘날에 더욱 뜻 깊은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의 축제> 20120909성경자료실
9) 수콧-초막절
모든 것이 편리한 오늘날의 생활은 인간에게 전에는 불가능했던 많은 것을 가능케 해준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인간은 그 이전에 조상들이 누렸던 어떤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는 그 중의 하나다. 유명한 유다교 신학자였던 헤셸(A.J.Heschel, 1907-1972)은 기계화, 산업화된 오늘의 소외상황에서 인간에게는 참으로 '안식(샵밭)'이 필요하며, 안식은 인간이 기계 세계에서 벗어나 잠시 인간적인 세계에 침잠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온 전통 명절은 잠시나마 과거의 사람들이 살았던 방식을 생각하게 하고, 때로는 그것을 현재에서 재현시켜 줌으로써 그러한 안식을 가능케 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추석이 오면 마치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햇과일 및 햇곡식으로 만든 음식을 놓고 조상에게 감사하며, 고유 의상을 입고 고향을 찾거나 성묘를 한다.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이스라엘의 전통 축제로서, 추수 감사의 의미와 함께, 자연으로 돌아감 으로써 자연의 의미를 가장 깊이 되새기는 축제가 바로 초막절이다.
1.초막절의 유래와 정신
레위 23장에 초막절(Sukkor)에 관한 지시가 나온다.
칠월 십오일, 땅의 소출을 거두어들일 때, 너희는 칠일 간 야훼께 축제를 올려야 한다.…이스라엘 국민은 누구나 초막에서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 초막에서 살게 했던 일을 후손 대대로 상기시켜 주려는 것이다.
초막절은 파스카, 오순절과 함께 유다의 3대 주요 축제이다. 이스라엘력 칠월 십오일부터 7일 간 거행되는데, 자기 집을 떠나 야회에 초막을 짓고 그 곳에서 생활한다고 하여 초막절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파스카와 마찬가지로, 초막절도 최종적으로 추수를 감사하는 고대의 농경 축제였던 것이 출애굽 사건 이후 의미가 확산되어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날이 되었다.
이름이 말해 주듯이 가장 큰 특징이 그 기간 동안 유다인들이 집을 떠나 수콧(Sukkor, 초막, 임시 오두막)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이런 광야 생활의 유산을 지키는 데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느님의 항구한 보호를 기억하고 생활을 통해 체험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은 에집트를 탈출한 후, 보잘것없는 초막에서 광야 생활을 했다. 전혀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황량한 그 곳에서, 이스라엘은 어느 때이던지 그 상황을 생활을 통해 체험코자 하는 것이다. 초막 그 자체 는 자기들의 집에 비해 힘없고 초라하지만, 그 안에 커다란 하느님의 영의 힘이 현존한다고 유다 인들은 믿는 것이다.
둘째, 초막이 가난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초막절은 추수가 완전히 끝나 사람들의 마음이 풍요로운 시기이다. 그런 시기에 가난한 초막으로 거주지를 옮김으로써 곧 생길지도 모르는 부와 풍요에 대한 자만심을 삼가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초막은 예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한다고 한다. 예속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개인이나 국가의 물리적 예속, 정신적․문화적인 예속, 그리고 인간의 내적(內的) 예속이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예속을 확연히 구분 짓기 어렵지만 파스카가 첫 번째 예속의 사슬을 끊은 사건을 기념하고, 오순절이 두 번째의 정신적․문화적 예속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다면,
초막절은 특히 인간의 내적 자유를 강조한다. 광야를 기억케 하는 초막생활은 여러 가지 종류의 인간을 얽어매는 예속-정욕, 알콜중독, 집착 등-으로부터 인간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초막절은 또한 유다인들의 최종적인 추수감사절이다. 감사는 유다이즘의 주요 특색으로서, 그것은 감사해야 할 어떤 존재가 분명히 있다는 강한 확신에서 출발한다. 쉽게 간파되기도 하지만 초막절이 가지는 또 하나의 본질적 요소는 기쁨이다.
초막절에 읽는 성서에는 3번이나 기뻐하라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기쁨이 유다이즘의 강조 사항이라는 점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시편을 포함해서 성서에는 물론이고 탈무드 전승 역시 하느님은 기뻐하는 마 음 속에 현존하신다고 전한다. 인간의 삶은 여러 가지를 통해 기뻐해야 하지만, 유다이즘이 기쁨 의 최고의 원천으로 삼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 목적이다. 그런데 유다이즘에서 말하는 기쁨은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로서, 그들은 기쁨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고양시키고자 한다. 초막절은 바로 그러한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축제이며, 초막절의 기쁨에는 얌 키퍼(속죄의 날)를 통해 죄를 속죄 받는 것에 대한 기쁨도 포함된다. 이처럼 초막절은 일종의 출애굽 기념 축제이자 추수감사절이며, 기쁨의 축제이다.
2.초막절의 의식과 관습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초막절의 의식이다. 유다교는 이 사 항을 법으로 정하고 있으며 그 법에는 초막의 건축 재료, 건축 방법, 모양 등 상세한 사항까지도 규정되어 있다. 그 규정에 따르면, 지붕의 재료로는 금속이나 가죽을 사용해서는 안 되고 나무나 짚 등을 사용해야 한다. 초막은 집 옆이나 근처에 짓고, 벽은 3면까지만 허용된다. 즉 4면 중 하나는 완전히 뚫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초막 안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오늘날에는 도시 사람들이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므로 초막을 짓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아파트 옥상이나 뜰에 짓고,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회당 안에다 짓는다. 현재 이스라엘에선 아름다운 초막 뽑기 경연대회를 벌이기도 한다.
여행자, 병자, 여자, 어린이는 초막에서 살아야 한다는 의무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가족 전체가 함께 초막생활을 즐긴다. 심한 우천시에는 초막생활이 면제된다.
초막생활 중 행하는 재미있는 관습 하나는 매일매일 성조 중의 한 분을 그들의 초막으로 초대 하는 예절이다.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혼이 들어온다고 믿는 문화권에 사는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예식이다. 아브라함,이사악,야곱,요셉,모세,아론 그리고 다윗을 차례대로 초대하는데, 전 가족이 초막 안으로 다 들어온 뒤 다음과 같은 경문을 읊는다.
"들어오시오. 우리의 훌륭하신 성조들이여, 들어오셔서 앉으십시오." 그리고 그날의 초대 손님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들어오시라고 외친다.
이 관습을 통해 유다인들은 자신들과 성조들과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위대한 성조들과 가족임을 느낀다. 또한 성조들이 지녔던 타인에 대한 환대와 친절도 본받는다.
또 다른 주요 관습은 초막절 첫날 네 가지 종류의 나무를 손에 들고 흔들며 기뻐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추수를 완전히 마친 것을 감사하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예식은 오늘날 도 회지에 살며 흙을 접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꽃과 열매를 대하는 기쁨을 준다.
초막절은 이처럼 광야생활을 기억하고 추수를 감사하며 초막을 짓고 7일간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이스라엘의 주요 축제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비어 있고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장소-광야를 문명 생활 중에조차 정규적으로 되찾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염원이 담긴 축제인 것이다.
<초막절>
히브리말 수카sukkah는 나무가지로 얼기설기 엮은 움막을 뜻한다.
이 단어의 복수형태가 숙콧sukkot인데 초막절은 숙콧의 번역이다.
그러니까 움막(초막)들의 축제란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며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그들은 몰랐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하느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초막절은 그때의 시련을 기억하며 의미를 되새기는 축제라 할 수 있다.
초막절은 연중 마지막 축제로 일주일간 열린다.
유대 전례력으로 7째 달인 '에타님 달' 15일에서 22일 해가 넘어가는 순간까지다.
양력으로는 9월 말에서 10월초에 해당된다.
이때 많은 유다인들은 수카(초막) 안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다.
잠을 자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개신교에서는 수장절이라 번역했다.
추수한 곡식을 저장할 때의 축제라는 뜻이다.
가톨릭에서는 장막절이라고도 했다.
유다인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뭇가지로 초막을 지었다.
올리브 나무와 소나무 또는 야자나무나 갯버들이 사용되었다.(느헤 8.15)
그리고는 잎이 무성한 생가지를 초막 안에 깔고 일주일을 지냈다.
그렇게 함으로서 선조들의 광야 생활과 시련의 의미를 몸으로 체험했던 것이다.
가족전체가 축제에 참여했기에 우애도 다지고 친밀감도 나누는 형장실습이기도 했다.
원래 이스라엘 남자들은 파스카 축일과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에는 의무적으로 성전참배를 애야 했다.
하지만 후대로 오면서 정치적 이유로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초막절은 성대하게 지냈다.
마지막 축제인데다 추수를 끝낸 뒤라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초막절이 되면 예루살렘에는 평소보다 두 배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고 한다.
유다인의 축제는 음력 14일과 연관된 날이 많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파스카 축제도 그렇고 푸림절도 그렇고 초막절도 음력 14일 밤부터 시작된다.
전깃불이 없던 시대에 둥근 달이야말로 가장 신비스런 불빛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초막절에는 전통적으로 한해의 비를 기원하는 기도를 바쳤다.
이스라엘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전혀 비가 오지 않는다.
초막절을 지내야 겨울비가 시작되고 비가 많아야 보리와 밀이 충분히 자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신은근 바오로 신부>
<유대인의 축제>20120911성경자료실
10) 푸림절
에스델서는 페르샤의 왕비가 되어 이스라엘을 파멸에서 구한 아름다운 왕후 에스델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성문서에 속한다. 부림절은 바로 이 이야기와 관계가 있는 이스라엘의 소축제이 다.
1.유래와 정신
푸림절은 이스라엘력 십이월(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에 지켜지는 축제로서 이스라엘이 파멸에 서 구원됨을 기뻐하는 날이다. 에스델서에 보면 '푸림'(Purim)의 유래가 나온다.
페르샤에 있던 유다인들은 그들을 미워한 하만이라는 대신의 음모로 멸종의 위기에 처한다. 그 러나 이스라엘 여성으로서 페르샤왕의 왕비가 되어 있었던 에스델의 지혜와 용기, 하느님께 대한 탄원을 통해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고 하만은 죽게 된다. 그 일이 아달월 13-14일에 걸쳐 이루어 졌던 관계로 자신들을 죽이려 한 자들을 벌하는 일이 끝난 14일-15일을 구원을 기뻐하는 축제로 삼게 된 것이다. '부림'이란 주사위를 의미하는 페르샤어 '불'(Pur)에서 유래되었는데, 하만이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계획할 때 그의 부하들이 주사위를 던져 일을 벌일 날을 택했다고 하여, 그 말 이 축제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그 주사위로 택해진 유다인들의 멸망의 날이 오히려 기쁨과 영광의 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에스델서는 이 축제의 유래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달은 쓰라림이 기쁨으로 바뀌고 초상날이 축제일로 바뀐 달이요, 이 날은 유다인들이 원수에게서 풀려난 날이라. 이 날을 기쁜 잔칫날로 지내며 선물을 주고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뻗는 날로 삼으라고 하였다(에스 9,22).
이처럼 푸림절은 악인의 음모에서 벗어나 구원받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보호하심에 감사하고 그들의 승리를 기뻐하는 축제이다. 에스델 왕후에 얽힌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유다인들에게 이 축제는 중요한 의미를 준다. 궁극에 가서는 악이 멸하고 정의가 승리하리라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림 절은 소 축제 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인들의 마음속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쁨의 축제다. 탈무드에는 메시아가 와서 다른 모든 축제가 사라져도 푸림절은 계속 지켜질 것이라고까 지 쓰여져 있다.
이스라엘을 죽이려고 한 하만은 에집트의 파라오와 마찬가지로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존재하 고, 심지어는 우리 개개인의 마음속에까지 내재하는 악(惡)의 표상이다. 그리고 푸림절은 이스라엘이 그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재확인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히틀러시대에 유다인들은 자주 히틀러를 하만에 비유하며 푸림절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한다.
2. 의식과 관습
푸림절의 가장 핵심이 되는 의식은 에스델서를 읽는 것이다. 에스델서를 읽기 전에 세 가지 감 사 기도를 드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금을 낸다. 이 때 바치는 감사의 기도는 하느님이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구해 주셨고, 그 예식을 거행하는 이 순간에 자신들을 살아 있게 하심을 감사하는 내용이다.
이 날 에스델서 두루마리는 편지의 모습으로 접혀져서 아름답게 장식된다. 편지의 모습으로 만 드는 이유는 유다인들에 관한 칙령이 편지로 각 지방에 전달되었고, 푸림절에 관한 지시도 편지 로 보내졌음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에스델서를 읽는 중에 행해지는 몇 가지 재미있는 의식이 있는데, '구원'을 말해주는 4개의 구절을 다른 구절보다 큰 소리로 읽고, 하만의 열 아들의 이름은 단숨에 읽어 내리고, 하만의 이름 이 나올 때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소리를 지르고 시끄럽게 해서 그 소리가 안 들리게 만드는 것 등 이다.
'구원'의 구절이란 에스델이 왕에게 청원하도록 하고 유다인들의 목숨을 건지는데 결정적 공헌 을 한 모르드개의 신분과 승리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 구절을 말한다. 하만의 열 아들 이름을 단 숨에 읽어 내리는 이유는 그들이 동시에 처형당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에스델서 이외에 이 날 봉독되어지는 성서는 아말렉족과의 전쟁 부분(출애 17장)과, 절망 속에 하느님께 애원하는 시편 22편이다. 출애 17장을 읽는 이유는 하만이 아말렉왕의 후손이라고 알려 져 있고, 유다인들은 아말렉과의 싸움이 곧 이 세상에서의 악의 세력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외의 관습으로는 에스델서의 규정에 따른 선물교환, 축제 음식을 먹으며 즐기고 마음껏 술을 마시는 것 등이 있다.
에스델서의 규정에 따라 푸림절에 유다인들은 친구들에게 먹을 것이나 술 등을 선물하고 적어 도 둘 이상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선물한다. 그리고 푸림절이 기쁨의 날이기 때문에 오후에 아직 해가 지기 전에 특별히 마련된 푸림음식을 먹는다. 푸림절에 유다인들은 술을 마셔야 하는 데 그것도 정신이 없어져서 하만과 모르드개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마실 것이 권장된다. 이처 럼 지나칠 정도의 음주가 권장되는 축제는 전 이스라엘 축제를 통해 푸림절 하나뿐이다. 그만큼 큰 기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푸림절 당일이 그토록 기쁨 축제이지만 그 전 날, 아달월 13일에는 에스델 왕후의 단식을 기억 하며 유다인들이 단식을 한다.
이처럼 푸림절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이 죽음에서 건져진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도한 악의 세력을 이겨낸 정의의 승리를 기뻐하는 날이다. 의인은 살고 악인은 벌 받는다는 생각 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때 많은 문제가 따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변치 않고 전해지는 푸림절의 메시지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가엾이 여기셨다는 것,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의 그들의 탄원을 들어주시고 그들을 살려주셨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참으로 비천하고 죄스럽다는 절망감의 사슬로 고통 받을 때, 인간은 고개를 쳐들 어 하느님을 향하게 되고, 하느님은 그 사슬을 끊어주시며 그를 다시 살게 하신다.
<푸림절>
<에스테르와 헬데르>
크세르크세스 임금 십이 년에 하만이 '푸르' 곧 주사위를 던지니
열둘째 달인 아다르 달이 나왔다.(에스 3.7)
에스테르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렇듯 '푸르'는 주사위를 던지는 행위 곧 제비뽑기를 뜻한다.
그리고 푸르의 복수형태가 푸림이다.
에스테르기의 '크세르크세스'는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를 다스렸던 임금이며 '하만'은 재상이다.
그런데 하만은 유다 민족과 적대관계에 있었다.
그는 왕을 움직여 유다인들의 재산을 빼앗고 민족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리하여 제비뽑기로 날짜를 잡았는데
'아다르 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하만은 실패한다.
유다인 출신의 에스테르 왕후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임금은 하만을 사형에 처하고 재산을 몰수해버린다.
이렇게 해서 유다인들은 멸족의 위험에서 다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푸림절은 이 사건을 기념해 만든 축제다.
그리고 아다르 달은 양력 2~3월에 해당되기에
이스라엘에서는 2월 말이나 3월 초에는 반드시 푸림절을 지내고 있다.
예절의 핵심은 '에스테르기의 낭독'에 있다.
무명의 가난한 처녀에서 왕후로 발탁되는 극적인 장면을 읽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개입하시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는 것을 되새기게 한다.
이후 친교를 나누며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시는 것으로 예식은 종결된다.
그런데 후대로 오면서 전례와 연관 없는 행사들이 첨부되었다.
17세기부터는 왕후 에스테르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이 성행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민속축제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큰 어린이 축제다.
하만이 임금을 움직여 유다인 말살문서를 왕명으로 공표한 날이 첫째 달(니산 달) 13일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파스카 축일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날도 니산달 13일이다(레위 23.5).
따라서 푸림절 제정에는 다분히 의도적인 면이 숨어 있었음으 알 수 있다.
유다민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자의식이다.
하만과 에스테르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기록은 찾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죽게 되면 기꺼이 죽겠습니다."(에스 4.16)
에스테르는 임금 앞에 나아가면서 이렇게 외친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면 누구나 죽음을 당하는 것이 페르시아의 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 뒤에는 유다인들의 애절한 기도가 있었다.
결과는 사건을 뒤집는 역전이었다.
<신은근 바울로 신부>
<유대인의 축제>20120913성경자료실
11) 시맛 토라-다섯 두루마리 축일
2차 대전 중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졌던 일은 너무 잔혹해서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결국 유다인 멸종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살아남았다. 한 민족의 잔존을 통해, 도대체 어떤 힘이 그들을 줄기차게 살아남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유다의 축제 시리이즈에서 끝으로 다루려고 하는 시맛 토라(Simhat Torah)는 그 답을 조금은 제시해 줄 수 있는 이스라엘의 전통 축제이다.
초막절 바로 다음날 지내는 이 축제는 원래 세미니 아제렛(Shemini Azeret)이라 불리운 초막절 을 마무리하는 축일이었는데, 11세기 이후 토라를 기념하는 의미가 강해져서 시맛 토라로 불리우 게 되었다.
1.유래와 정신
성서에 보면 초막절에 관한 명령과 함께 초막절이 끝난 다음날 하루를 더 축일로 지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날이 바로 세미니 아제렛이다. 일반적으로는 초막절의 끝 날로 인식되지만 문헌상으로는 독립된 축일로 기록되어 있다.
성서상에는 하루를 더 축제로 지내야 하는 이유가 나와 있지 않다. 그리하여 유다의 옛 현인들은 이 축제의 의미를 아제렛(Azeret)이란 단어의 뜻에서 찾았다. 아제렛은 '모임','회중' 등으로 번역된다. 그것은 또 '멈추어서 기다림'이란 의미도 된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은 이 단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했다 : 어떤 왕이 자기 자녀들 모두를 며칠 동안 계속된 잔치에 초대했다. 즐거운 시간을 함게 보낸 후 자녀들이 돌아갈 시간이 되자 헤어짐을 못내 아쉬운 왕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애들아, 하루만 더 머물러다오. 너희들이 떠나는 것이 정말 아쉽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이 비유에 나오는 왕처럼 생각하고 '헤어짐은 그렇듯 달콤한 슬픔'이라는 자신들의 축제에 대한 전형적인 태도를 세미니 아제렛에서 드러내었다. 축제는 짐이 아니라 주님의 궁전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기쁘고 즐거운 잔칫날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가 담겨진 전통축제 세미니 아제렛이 11세기 이후부터 시맛 토라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시맛 토라'(Simahat Torah)란 '토라를 경축함'이란 뜻으로서 1년을 주기로 행해지는 회당 의식에서의 토라 봉독이 끝났음을 기뻐하는 날로 기념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곧 유다인들의 삶에 토라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기억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바로 이 시대에 토라가 주는 의미를 상황에 맞게 재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미니 아제렛에 토라의 마지막 부분인 신명33-34장을 읽기 시작한 것은 탈무드에 의해서였다. 그 이후 점차 토라를 경축하는 특별예식이 발달되면서 세미니 아제렛은 오히려 시맛 토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20세기에 와서 소련의 유다인들에게 기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시맛 토라를 통해서였다.
1960년대에 엘리 위젤(Elie Wiesel)은 소련의 유다인들을 가리켜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하여 침묵하고 있는 유다인들"이라고 묘사했다. 그런데 그 말은 그나마도 구세대의 유다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혁명으로 공산화가 된 후 50년이 지나자 유다인들의 집회 및 교육이 공식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고 유다인들의 문화는 탄압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의 유다인들이 "유다인 의 특성"을 포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소그룹의 젊은 유다인들이 시맛 토라 축제 저녁에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회당 둘레에 모였다. 거기서 그 들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그날 밤 으레히 하듯이 히브리 노래를 부르고 전통적인 유다의 춤을 추었다. 이 모임에 관한 이야기는 점차 퍼져나갔고 해를 거듭하면서 그런 식의 모임은 확산되었다.
비록 이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종교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들로서 단지 자기 민족의 유산을 수호하려는 민족의식에서 이런 모임에 참가했다 하더라도 특별히 이날, 시맛 토라 축제를 위해 모였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많은 종교적 축제를 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시맛 토라를 지내기 위해서 그들은 위험을 안고 모였던 것이다. 이 사실은 참 으로 토라가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지켜온 원동력임을 말해 준다.
2.의식과 관습
시맛 토라 축제의 가장 중요한 의식 두 가지는 토라 행렬과 토라 봉독이다. 토라 행렬을 하카 포(Hakkafot) 의식이라 한다. 축제가 시작되는 날 저녁 이스라엘 회중은 모여서 토라를 모두 궤에서 꺼낸다. 독서자가 독서 할 내용이 담긴 두루마리를 들고 행렬을 인도하여 회당을 보통 7번 돈다. 이 행진 때 나머지 두루마리는 행렬에 참가한 사람들이 하나씩 나누어서 나르며, 한 번의 순회가 끝날 때마다 두루마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준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두루마리를 운반하는 명예를 갖기 위함 이다.
순회하는 동안 그들은 정해진 노래를 부르고 기도문을 암송하는데, 이 때 부르는 성가 중 어떤 것은 다음과 같은 후렴구를 반복한다. "주여, 우리를 제발 구원하소서. 우리가 승리하게 하소서." 경우에 따라 순회가 끝날 때마다 함께 춤을 추며 노래하기도 한다. 하카포 예식에는 알록달록 한 기름 든 어린이들도 참가시킨다. 시맛 토라의 두 번째 주요 의식인 토라 봉독은 이날이 토라의 날인만큼 회중이 모든 성인 남자에게 토라를 봉독할 기회를 주는 예식으로 진행된다. 신명33,1-26을 돌아가며 되풀이해서 봉독하는데 참가한 모든 성인 남자가 다 한 번씩 읽을 때 까지 계속한다. 때에 따라서는 시간 절약을 위해 소그룹으로 나누어 예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신명33,1-26 봉독이 끝난 후에는 마지막으로 신명33,27-34,12을 한 번 읽고 토라 읽기를 마친다. 그와 동시에 모든 참가자가 일어서서 "굳세게, 굳세게, 우리를 굳세게 하소서"라고 외친다. 유다인들은 모세오경의 봉독을 끝낼 때 늘 이 기도문을 바친다.
이처럼 시맛 토라는 이스라엘의 생명인 토라의 날이다. 또한 떠나는 자녀들과 헤어지기 아쉬워 하루를 더 머물기 원하는 하느님의 청에 응하며 하루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날이다. 그러므로 이 축제는 다른 모든 축제를 제치고 오늘의 소련에 거주하는 유다인들로 하여금 다시 모여 야훼의 백성의 노래와 춤을 즐기게 하는 힘을 준 축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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