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톨릭 성지 267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9. 중심형 성당과 산타 코스탄차

산타 코스탄차, 마음 드높여 주는 중심형 성당 공간의 정수 산타 코스탄차 성당 내부. 출처=cambridge.org 산타 코스탄차 성당 볼트 천장. 출처=througheternity.com 죽음과 관련된 세례와 장례에 특화된 성당 성당 건축에는 바실리카식과 함께 중요한 유형이 하나 더 있다. 중심형이다. 중심형 성당이란 건물을 이루는 모든 부분이 중심에 집중하여 구성된 성당을 말한다. 평면은 보통 원형, 8각형, 정사각형, 네 팔의 길이가 똑같은 그리스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중심형 성당은 로마의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에서 보듯이 기하학적으로 명쾌하고 완성도가 높다. 바실리카식은 후에 로마네스크 건축이나 고딕 건축의 바탕이 되었고, 중심형은 비잔티움 성당이나 르네상스 이후의 고전주의 건축에서 중요하게 ..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8. 옛 성 베드로 대성전의 공간과 행렬

하느님 향한 거룩한 여정 이끌도록 설계된 건축 형태 옛 성 베드로 대성전. 출처=Liturgical Arts Journal 옛 성 베드로 대성전 3D 복원도. 출처=Liturgical Arts Journal 옛 성 베드로 대성전 내부. 출처=Liturgical Arts Journal 옛 성 베드로 대성전 내부 복원도, 1500-50년 프레스코화. 출처=성 베드로 대성전 제의실, 바티칸 베드로 사도 묘 위에 세워진 대성전 지금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에 의해 새로 착공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30년경 성 베드로 사도 묘 위에 세워 준 옛 성 베드로 대성전(Old St. Peter‘s Basilica)이 있었다. 옛 성 베드로 대성전은 40년에 걸쳐 바실리카식..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7.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바실리카식 성당

콘스탄티누스 대제, 로마와 예루살렘에 바실리카식 성당 봉헌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부, 13세기 프레스코화. 출처=Wikimedia Commons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 395년. 출처=Wikimedia Commons 신트로논, 하기아 이레네. 출처=ByzantineLegacy 최초의 바실리카식 성당 313년에서 337년까지는 교회의 결정적인 시기였다. 교회의 위치와 조직은 전적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달려 있었다. 그는 임종 직전에 세례를 받은 평신도였지만 그는 자신을 13번째 사도이자 교회 공의회도 직접 주재하는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께 대한 감사의 표시로 본디 라테라노 가문에 속한 땅을 기증하고 최초의 바실리카식 성당을 313년에 짓기 시작하여 324년에..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6. 왜 바실리카식 성당이었는가

바실리카, 거룩하신 하느님께 예배 드리는 전례 공간으로 발전 산 조반니 라테라노 대성전, 로마. 출처=Michal Hajek 바실리카 울피아 내부. 트라이아노 광장, 로마. 출처=Gilbert Gorski 바실리카 울피아 단면 복원도.(오른쪽이 앱스와 데이스) 출처=ARCHI/MAPS 바실리카식 성당의 특징 다시 한 번 더 묻자. 성당은 어떤 건물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예배드리기 위한 공간을 가진 건물, 그것이 성당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공간은 벽과 기둥, 보와 지붕, 행위를 담는 바닥이라는 건축의 형식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그런데 크게 보면 성당의 형식은 두 개뿐이다. 이 두 형식은 아주 오래전 고대 로마 건축 유형에서 받았다. 하나는 ‘영묘(靈廟, 마우솔레움 m..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5. ‘2만 순교자’의 니코메디아성당

모든 그리스도인 구원하려 높은 곳에 우뚝 선 위대한 건물 ‘2만의 니코메디아 순교자들’, 「바실리오의 메놀로기온 II」(11세기 비잔틴 사본, 바티칸 도서관) 출처=Wikimedia Commons 니코메디아의 옛 정경, Gaiaud 그림 출처=Le Tour du Monde, Paris, 1864 박해 중단 시기 건립된 성당 동로마 제국의 가장 오래된 수도 니코메디아(Nicomedia)에 아주 큰 성당이 있었다. 니코메디아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의 동쪽을 다스리게 되면서 286년 신행정수도로 선택한 도시였다. 베드로 사도가 서간에서 인사하던 비티니아(Bithynia)의 수도였으며, 지금은 이스탄불 근처 도시 이즈미트(Izmit)이다. 그만큼 니코메디아는 그에 걸맞게 크게 개발되었는데, 당시의 ..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4. ‘아울라 에클레시에’라는 성당

건물 전체를 직사각형 홀로 만든 새로운 형식의 성당 등장 키르크비제의 성당 남쪽 벽, 시리아. 출처=Wikimedia Commons 크알브 로제의 성당, 시리아. 출처=Mustfa Habib 새로운 형식의 성당 ‘교회의 집(도무스 에클레시에)’은 기존의 주택을 개조하거나 확장했다. 그러나 성당은 ‘교회의 집’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 바실리카 형식으로 직접 변한 것이 아니다. 이 둘 사이에 또 다른 성당 형식이 있었다. 250년에서 313년까지는 더 넓은 집회실, 공동식사보다는 성체성사을 거행하는 규범을 갖춘 성당이 필요했다. 또한, 갈리에누스 황제에 의한 그리스도교 박해가 중지되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다시 시작되기까지 비교적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40년간, 특히 270년에서 303년까지..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3. 두라유로포스 ‘교회의 집’

연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성당… 신앙 공동체 전례 정식화 두라유로포스 ‘교회의 집’ 가상도. 출처=Wladek Prosol 가장 오래된 교회의 집 ‘도무스 에클레시에’ 곧 ‘교회의 집’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의 성당 중 유일하게 식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성당이 1933년 시리아의 두라유로포스(Dura-Europos)에서 발굴되었다. 이것은 400년 이후에 알려진 것도 없고, 230년 이전에도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제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연대도 확인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유프라테스강 상류 지역에 있었던 두라유로포스라는 지명은 고대 도시 두라(Dura)를 헬라인들이 에우로포스(Europos)라고 불렀던 것에서 비롯한다. 두라유로포스는 본래 로마 제국의 동쪽..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2. 주택을 개조한 ‘교회의 집’

피나는 박해 겪고도 주택 개조한 ‘교회의 집’에서 전례 거행 산 크리소고노 대성전(Basilica di San Crisogono) 출처=Wikimedia Commons 산 크리소고노 대성전의 지하 반원 제단. 출처=Jeff Bondono 주택에서 출발한 교회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교회는 살림집인 주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신자들은 계속 늘고 있었다. 250년까지 소아시아는 60%가 그리스도인이었다. 로마에는 신자가 3만에서 5만 정도가 되었고, 북아프리카에는 작은 마을 규모의 신자들이 수백 개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주택의 식당이나 안마당만으로는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점점 더 큰 공간이 필요해진 것이다. 일단 그들은 주택을 고쳐 이를 해결했다. 이것이 지난 회차에서 말한 ‘주택 교회’와는 다른 ‘교..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1. 주택에서 시작한 성당

그리스도교 공인 이전 신앙 선조들은 주택에서 성찬례 거행 예루살렘의 다락방. 출처=RadoJavor 대체로 이렇게 알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받아 자유로이 모이기도 어려워서 이렇다 할 성당이 없었다. 그러다가 313년 그리스도교가 공인받고 나서 비로소 로마인들의 공공장소인 바실리카를 이용해 성당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무 준비도 없다가 바실리카라는 큰 공간을 이용하여 만든 성당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이 질문을 시작으로 몇 회는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을 향해 걸어간 신앙의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교회, 건물이 아니라 모임 뜻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파하러 나선 곳은 주로 큰 도시였다. 그러나 100년쯤에는 이스라엘의 동쪽 지역으로 넘어가 그곳의 작은..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0. ‘능동적 참여’는 평면형이 아니다

주님 고통에 동참하듯 마음 다해 예배하는 것이 ‘능동적 참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전례헌장)을 통해 전례에 대한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강조했다. “어머니인 교회는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를 하도록 인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한 참여는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것이다.”(14항) ‘능동적 참여’는 「전례헌장」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어다. 능동적 참여에 대한 해석 그러나 웬일일까, 「전례헌장」에서 성당 건축을 언급하는 것은 성미술 전반에 관한 124항의 문장 끝에 단 한 곳뿐이다. “성당 건축에서는 전례 행위의 실행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 확보에 적합하도록 힘써 배려하여야 한다.” 어떤 평면으로 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 없다. 「전례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