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핵심·자기이해 131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4) 내게 신앙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오래전 인기를 끌었던 ‘김치 주제가’의 일부다. 한국 사람에게 김치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해외 성지순례나 해외여행 등 오랜 시간 고국을 떠나있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한국에 돌아가서 가장 먼저 먹고 싶은 것을 꼽으라면 필자는 고민 없이 돼지고기와 두부가 듬뿍 들어간 얼큰한 김치찌개라고 말한다. 있을 때는 모르지만, 막상 없을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신앙이 우리에게 그처럼 소중한 것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얼마 전 프랑스를 방문하며 조셉 도레 대주교님을 뵐 기회가 있었다. 유학 중에 알게 된 대주교님은 프랑스의 저명한 신학자요 사목자로서, 그리스도론과 종교 간 대화 분야에서 다수의 연구와 저술 업..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3) 세례 때의 서약

“교회의 맏딸 프랑스여, 당신은 세례 때의 서약을 어떻게 하였습니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980년 6월 프랑스에 도착하며 프랑스인들 앞에서 강론 중 하신 말씀이다. ‘교회의 맏딸’이라 불릴 정도로 교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프랑스, 하지만 세속화 물결 속에서 신앙의 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당시 프랑스 교회에 던지신 이 질문은 많은 프랑스 신자들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교황님의 이 질문은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세례 때의 서약을 어떻게 하였나? 각자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세례 예식을 잠시 떠올리는 것도 좋겠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세례 때를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지 모르겠다. 세례 때 예비신자는 먼저 자신이 하느님의 교회에 신앙과 영원..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2) 신앙에 관해 물을 때

당신에게 신앙은 무엇인가요? “당신에게 신앙이란 어떤 것입니까?” 신학원에서 신학입문 강의 때 신자분들께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이 질문 앞에서 대체로 신자들은 매우 당황한다. “삶에서 신앙이 어떤 것인지 묻는 것이니 편하게 답해주세요”라고 설명해도 당혹감을 떨쳐내지 못하신다. “그냥 성당에 다니는 거죠”라면서, 신앙에 대해 따로 물음을 던지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종종 말씀하신다.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하는 질문은 일견 생소하게 다가오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을 뿐, 실은 일상에서 종종 던지는 질문이며, 신앙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이는 마치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자기 삶에 관해 물음을 던지는 것과도 같다. 인생에서 큰 시련이 찾아왔을 때, 중병에 걸리거나, 죽음을 마주할 때 다음과 같..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 그동안 나의 신앙을 어떻게 했나

신앙에도 코칭이 필요하다 ‘금쪽’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귀하고 소중한 것’이란 뜻이다. 부모들이 종종 사용하는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표현은 2000년대 초반에 방영된 드라마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가정의 중요성과 가정 내 세대 간의 갈등 문제를 다루며 큰 인기를 누렸다. 최근에는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흥미를 끌고 있는데, 육아 관련 전문가들이 부모들에게 육아법을 코칭하는 프로그램으로 특히 젊은 부모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요즘 들어 이런 주제들이 관심받는 이유는 그만큼 가정 내 세대 간 갈등이나 육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때문일 것이다. 혼인과 가정의 위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지난 제14차 세계..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25·끝) 인류의 영원한 멘토 단테「신곡」

그리스도교적 인간상 회복에서 희망을 찾다 700년 전 시대의 절망을 느낀 단테 구원의 절대 덕목으로 ‘신망애’ 강조 지복직관으로 이끄는 희망의 예언자 지옥 편은 신앙 없는 군상의 비참함을 연옥에선 희망 안에 수행하는 죄인을 천국 편은 하느님 만나는 지복자 그려 이탈리아 베로나에 있는 우노 찬노니의 ‘단테상’(1865년). 2002년 일본의 철학자인 이마미치 토모노부 선생으로부터 뜻밖에 「단테 신곡 강의」를 선물로 받고 나의 「신곡」 공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0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의 관심이 오로지 「신곡」에만 집중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철학자인 스승이 생의 거의 마지막 무렵까지 「신곡」을 붙들고 있었다는 점, 「신곡」이 시로 쓰인 점, 그것도 내가 접근할..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24) 천국에서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다

로세티 ‘단테의 사랑’(1860년). 이제 초점은 오로지 육화의 신비에 집중된다. 우리의 사멸할 육체가 어떻게 삼위일체의 제2위인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분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 육체로부터 부활하였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1코린 15,49)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마치 기하학자가 원을 측정하려고 집중력을 다 쏟아 부어도 자신이 구하는 원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것처럼 그 새로운 광경 앞에서 내가 그랬다. 나는 그 모습이 이 원과 어떻게 합치되고 어떻게 그 안에 들어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내 날개는 거기에 충분하지 않았다.(천국 33, 133-139) 육화의 신비를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것은, 마치 기하학자가..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23) 지복직관(visio beatifica)

천국서 하느님을 뵙는 단테 영광의 빛의 광휘로 들어가 하느님에 의해 신비에 관통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 위해 단테가 본 하느님 모습을 기억·표현할 수 있도록 기도 “인생은 나그넷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옛 대중가요 ‘하숙생’의 한 구절처럼 사람은 누구나 다 길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자는 그저 정처 없이 흘러가는 나그네(viator)가 아니라, 확실한 목적지에 도달할 순례자(comprehensor)라는 점이 다르다. 순례의 끝에는 하느님을 영원히 뵙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성 베르나르도의 단테를 위한 기도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지금 이 사람은 우주의 가장 낮은 구덩이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숱한 영혼들의 삶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이르렀습니다. 당신께 은총을 주십사 비오..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22) 성모의 가수 ‘성 베르나르도’

강렬한 성모 신심 지닌 천국의 마지막 안내자 신비적 관상에 바쳐진 수도자 관상 안에서 주님께 향하는 영혼의 정감적 운동을 강조 성모께 찬미 노래 바치며 단테의 지복직관 위해 기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사본, ‘천상 장미 옥좌의 성모’(1365년경). 지옥 편에서 단테는 제9 지옥 맨 아래까지 가서야 얼굴이 셋인 악마 대왕 루치페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듯 천국 편에서도 단테는 제9천(天)인 원동천(原動天) 그 너머 지고천(至高天, Empireo)에 이르러서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만나 뵙게 된다. 사실 「신곡」 전체는 천국 편의 마지막 곡인 제33곡 바로 이 곡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보인다. 단테는 지고천에 이르러 놀라움과 기쁨 사이에서 멍하니 주위를 둘러본다. 나는 인간 세상에서 하느님 세상으로 왔고,..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22) 미래로의 귀향

과거의 향수 물리치고 ‘영혼의 본향’ 천국으로 베아트리체와 함께 승천해 영원한 천국의 신비를 누설 가기 어렵다는 좌절감 주고 뒤이어 독자들의 분발 자극 순수한 빛과 사랑의 하늘인 ‘지고천’으로 독자들을 초대 조반니 디 파올로의 ‘하늘로 오르는 단테와 베아트리체’.(1445년경)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1,33)에서 “로마 민족을 창건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과업이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가 그저 육신의 고향으로 귀향하는 것과는 다른, 정신의 고향인 ‘미래로의 귀향’이었기 때문이다. 이마미치 토모노부는 바로 이 점이 단테가 호메로스가 아닌 베르길리우스를 스승으로 공경한 특별한 이유였다고 말한다. 단테는 끝내 육신의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가는 길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에의..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20) 에우노에 강에서의 부활

베아트리체의 부탁으로 단테를 강으로 이끈 마텔다 악을 잊게 하는 레테 강과 선 상기시키는 에우노에 강 강물을 마시며 영혼 정화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사본, ‘레테와 에우노에의 샘’(14세기 후반). “하느님, 이방인들이 당신 소유의 땅으로 쳐들어와, 당신의 거룩한 궁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시편 79,1) 향주 삼덕과 사추덕의 여인들이 교회의 타락한 현실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교대로 성가를 부른다. 베아트리체는 십자가 아래의 성모 마리아처럼 비통한 표정으로 교회의 황폐를 슬퍼한다. 그리고는 교황청의 아비뇽 천도와 그 이후 로마로의 귀환을 예언한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요한 16,16)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