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화,과학,군복음화 860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48) 숲세권

숲 경영을 생각할 때 언제부턴가 아파트의 분양 광고에 ‘역세권’이란 말이 사라지고 ‘숲세권’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택의 선정 기준에서 빠질 수 없는 조건이 바로 전망권이다. 그러나 과거 이런 전망권은 ‘상권’이나 교통의 편리함을 위해서는 희생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젠 어떤 다른 조건보다도 숲이나 녹지, 그리고 강과 바다를 볼 수 있는 조망권은 가장 먼저 고려되는 선정 조건이 되고 있기에 아파트 분양업자들은 이 ‘숲세권’을 앞세워 광고한다. 벌써 7년 전, 내가 대전에서 청주로 이사 오면서 가장 고려했던 주거 조건은 바로 거실 창에서 숲을 볼 수 있는 집이었다. 그런데 그런 집을 찾는 것이 쉬운 게 아니었다.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나오는 집마다 보이는 건 다른 건물이나 시내의 콘크..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Ⅱ] 갈릴레오 재판 사건 (8)제1차 갈릴레오 재판(1616년)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은 이단”이라는 교회에 순명 약속했지만… 지동설 옹호 말라는 교회 명령에 갈릴레오, 침묵하며 조용히 지내 고향 폴란드 토룬에 있는 코페르니쿠스 동상.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갈릴레오가 심혈을 기울여서 쓴 「크리스티나 공작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의 의도와 달리 ‘무엄하게도’ 성경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실제로 재해석할 권한이 일개 평신도에 불과한 그 자신에게도 있다는 생각을 암시한 것으로 비쳤습니다. 이 편지의 사본은 자유롭게 복사되고 회람되었기 때문에, 그 글을 읽은 가톨릭 성직자들이 보기에 그는 오만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프로테스탄트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인상마저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갈릴레오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17) 윤용하 요셉 (상)

수도자를 꿈꿨던 음악 신동 윤용하, 한국의 슈베르트가 되다 전쟁과 보리밭 라디오에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가 흘러나온다. 세계적인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부르는 ‘보리수’이다. ‘겨울 나그네’는 음울하고 어둡다. 마치 회색 구름이 잔뜩 낀 겨울 날씨 같다. 그 노래를 들으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겨울 들판을 헤매는 듯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슈베르트는 말년에 가난과 병에 시달리며 고독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윤용하(요셉, 尹龍河, 1922~1965)를 떠올리면 ‘슈베르트’가 생각난다. 슈베르트의 삶과 윤용하의 삶은 닮았다. 슈베르트는 말했다. “내 음악은 내 재능과 불행의 자식들이다. 내가 가장 가난하고 괴로울 때 쓴 음악을 사람들은 가장 좋아할 것이다.” “보리밭 ..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47) 숲, 살아있는 병원

산림, 최고의 처방전 복지의 사전적 정의로는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높은 삶의 질이 보장되는 것을 뜻한다. 요즈음 ‘산림복지’란 말을 많이 한다. 우리나라 국토의 64%를 차지하고 있는 숲을 가지고 국민의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을 제공해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숲은 우리의 삶의 질과 복지에 다각도로 영향을 준다. 숲에서 얻는 경제적 자원은 우리 삶을 풍족하게 하고, 깨끗한 공기와 온화한 기후로 쾌적한 삶을 살게 하며, 숲에서 여가와 휴양도 즐기게 해 준다. 또한, 최근에는 숲에서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시설과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숲이 주는 복지혜택이다. 물론 목재나 먹거리 등의 ..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46) 숲으로 발전하는 대한민국

행복의 열쇠는 숲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은 주장했다. ‘행복’이란 추상적인 개념임에도 이를 위해 국가는 이를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토머스 제퍼슨은 구체적으로 이의 실현을 위해 “나는 이 나라를 우리 어린이들이 더 살기 좋고 안전한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다.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경제적 발전을 이루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칭송을 듣는 나라이다. 그런데 ‘결국 이런 경제의 발전은 우리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는가?’ 참 의문이다. 오히려 빈부의 격차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높아지고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 자살률은 세계 1, 2위를 왔다 갔다 하고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16)구상 요한 세례자 (하)

소외된 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간 시인 구상 구상은 걸레 스님 중광 등 시대의 아웃사이더 기인들과 친분이 깊었다. 사진 왼쪽부터 중광,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김종규, 구상, 혜련 스님. 칠순의 나이를 살며 구상은 “나는 한평생, 내가 나를 속이며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구상과 각하 박첨지 6ㆍ25 전쟁이 일어났다. 구상(요한 세례자, 具常, 1919~2004)은 육군종군작가단에 소속되었다. 서울 수복 때에는 정훈국 선발대에 합류했다. 승리일보를 만들어 서울 시민에게 뿌렸다. 국군은 계속 북진했다. 북진을 따라가면 원산에 계신 어머니를 모셔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신문을 만드느라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구상은 이 일을 평생 후회했다. 형 구대준 신부는 전쟁 전에 덕원수도원을 지키다가 다른 신부들과 함께 공..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Ⅱ] 갈릴레오 재판 사건 (7)갈릴레오와 교회 간의 긴장 2

“성경은 신앙적 내용이 우선… 자연 현상은 과학 의견 받아들여야” 성경 저자와 독자의 한계 고려해 문자적 해석은 위험하다고 경고 신앙과 구원 내용 우선할 것 강조 산드로 보티첼리 ‘연구하는 성 아우구스티노’.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에서 성경의 저자들이 하늘의 모양에 관한 진리를 알았지만, 그들을 통해 말씀하신 하느님의 영께서는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러한 것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고 설명했다. 갈릴레오는 벨라르미노의 답신 내용을 접한 후 이전에 작성한 「카스텔리에게 보내는 편지」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은 「크리스티나 공작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자연과학적 지식과 성경의 가르침이 서로 부딪힐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자세..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45) 숲이 주는 공익 기능

숲의 가치 환산한다면 259조 숲은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의 환경과 생태계가 잘 버티고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목재와 펄프 같은 경제적 자원을 생산하기도 하고, 공기 정화나 기후조절 기능, 야생동물이 잘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의 여가와 휴식을 잘 보내게 하는 휴양처를 제공하기도 하며 건강을 담보하는 기능도 있다. 이런 숲이 다양한 기능 때문에 숲을 경영하는 데 많은 고민과 가치의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마다 숲에서 원하는 가치가 다르고, 또한 각기 다른 가치를 위해 경영하기 위한 판단과 관리 기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숲을 대하는 우선 가치가 경제적 산물의 산출이었다. 목재를 생산한다든가 기타 산물을 생산하는 경제적인 자원이 숲의 가장 큰 ..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15) 구상 요한 세례자 (상)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 구상 시인… 자유로운 창작 위해 월남 구상 시인 가을 냄새가 나는 시인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 구상(요한 세례자, 具常, 1919~2004)의 시 ‘오늘’이다. 나는 예전에 경북 왜관에 있는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렉시오디비나(聖讀) 피정에 참가했었다. 가장 무더운 8월 초였다. 피정을 마치고 낙동강 변에 있는 구상문학관을 찾았다. 구도자적 삶을 산 시인이라 그의 예술세계가 궁금했다. 왜관은 구상이 6·25전쟁부터 서울로 이사할 때까지 산 곳이다. 문학관에 들어서자 맨 먼저 반긴 것은 조각상이었다. ‘시인의 명상’이란 청동상인데 눈을 감고..

[신원섭의 나무와 숲 이야기] (44) 진달래꽃

봄의 주인공, 진달래 나는 충북 진천의 한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까지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절 교우들이 이 근처로 숨어들어 숯을 굽고 신앙생활을 했던 교우촌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친구들의 이름보다는 본명이 더 익숙하게 불리었던 기억이 있다. 산촌 민가 주변이 다 그렇겠지만, 나의 고향 뒷동산에는 유난히 진달래가 많았다. 이때쯤 되면 온 산이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붉은색으로 채색되었다. 동네 뒷산의 어귀쯤에 호랑이 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었고, 그 아래 조그만 공간이 있어 아이들이 즐겨 찾는 놀이터였다. 특히 숨바꼭질할 때 숨는 아주 단골 장소였다. 내가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 날 저녁 무렵으로 기억된다. 숨바꼭질을 하는데 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