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자 료 실 1223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6) 중국 가톨릭의 대표 지성, 마상백(馬相伯)

동·서양 문화에 탁월한 조예… 천주교 토착화 운동 선구자 전통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신앙에 바탕 둔 인생관 소유 예수회 운영 서회공학 입학 사제품 받고 교육활동 힘써 근현대 중국 교육·정치 견인 1937년의 마상백.최병욱 강사 제공 17세기 중국교회사 연구에서 서광계(徐光啓)의 역할이 중요하다면 19~20세기 중국교회사에서 반드시 거론돼야 할 인물이 마상백이다. 한때 예수회 신부이기도 했던 마상백은 근현대 중국에서 유명한 교육가이자 정치가였다. 진단학원(震旦學院), 복단대학(復旦大學) 설립자이기도 하며, 보인대학(輔仁大學) 설립에도 참여했다. 그는 1840년에 태어나 1939년까지 1세기를 살았던 사람으로 그의 일생은 중국 근현대사와 함께했다고 할 수 있다. ■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다 마상백은 아편전쟁..

성 경 자 료 실 2021.11.23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5) 급변하는 세계 속 일어서는 중국교회

천주교 현지화와 혁신 이뤘지만… 선입견 극복 ‘아직 먼 길’ 뱅상 레브 신부, 교회 개혁 주도 교황 교서로 선교 방식도 전환 20세기 초반 교세 확장 결실 서양문물에 대한 반감은 여전 19세기를 유럽 열강의 중국 침탈 시기로 인식하며 반그리스도교 정서가 팽배했던 중국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중국인 사제와 신자들이 증가하며 교회 발전의 가능성을 보이게 된다. 당시 중국 내 교회 개혁을 주도했던 뱅상 레브 신부의 노력과 베네딕토 15세 교황의 「가장 위대한 임무」(Maximum Illud) 선포는 천주교 중국 현지화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19세기 아편전쟁 이래 뿌리 깊었던 중국 내 반그리스도교 정서로 인해 여전히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 중국의 ‘5·4운동’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

성 경 자 료 실 2021.11.07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4) 혼돈과 얼룩의 시간 - 의화단 사건

유럽 열강·교회에 대한 반발… 끝내 비극 부른 증오와 폭력 비밀종교의식 공유하던 의화단 민생파탄으로 조직 급속 확대 청일전쟁 후 위기 몰린 서태후 서양과의 투쟁에 의화단 이용 사제·신자 살해 등 참극 불러 프랑스 신문 ‘르 프티 주르날’ 1900년 8월 5일자에 실린 삽화 ‘만주 봉천의 성당에서 벌어진 학살’. 의화단이 주교 1명, 신부 2명, 200명이 넘는 중국 천주교 신자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시신을 절단했다는 기사와 함께 실려 있다.김윤선 교수 제공 “1900년 중국 북경. 이전부터 이어진 가뭄 피해로 인한 흉작으로 1억의 민중이 굶주렸으며, 민심은 흉흉하고 불안했다. 먼 12개국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외국인 거류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의화단(義和團)을 소재로 한 영화 ‘북경의 55일’ 첫 장..

성 경 자 료 실 2021.10.26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3) 프랑스 선교 보호권 문제

서양과 조약 맺고 천주교 금지 해제… ‘정치 개입’ 논란도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 파견 중국 황실에서 영향력 발휘 1884년 10월 황포조약 체결 이후 천진·북경조약 맺으며 선교 보호권 법적 승인 받아 불법 조항 등 외교 문제 비화 “프랑스의 전통적 보호 정책이 극동에서 성립됐다.” 프랑스와 중국(청나라)이 1860년 북경(北京)에서 조약을 체결하자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모니퇴르’(Le Moniteur)가 1861년 1월 11일자에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 말은 중국에서 프랑스의 천주교 선교 보호권이 국제법적으로 보장받았음을 의미하며, 나아가 프랑스가 중국에서 천주교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게 됐음을 뜻한다. ■ 포르투갈 선교 보호권(Padroado) 일찍이 동방 항로를 발견한 포르투갈은 알렉산델..

성 경 자 료 실 2021.10.10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2) 중국교회와 조선교회

천주교 탄압 극복하고 선교사제 조선 입국 전진기지 역할 조선교회 관할 맡은 북경교구 주문모 신부 조선으로 파견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 후 전교 나선 파리 외방 전교회 만주·상해 등지에 거점 두고 조선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는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가 파견해 조선에서 사목한 최초의 신부로 1795~1801년까지 사목활동을 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 1784년 이승훈(李承薰)이 북경 천주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들어와 친척과 지인에게 전교하고 세례를 줌으로써 조선 천주교회가 성립됐다. 이후 1789년과 1790년 2차에 걸쳐 조선 신자들이 윤유일(尹有一)을 북경에 파견함으로써 조선교회가 자생적으로 생겨난 사실이 중국교회는 물론 로마 교황청에도 알려지게 됐다. ..

성 경 자 료 실 2021.09.22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1) 황실 궁정화가 카스틸리오네

회화로 전한 ‘주님의 사랑’ 그 어떤 수식어보다 강렬했다 황제 3명과 쌓은 50여 년 우정 신앙의 관념을 예술 통해 소개 금지령으로 끝내 성공 못했지만 닫혀 있는 전통화법 극복하고 하느님 나라로 시선 돌리게 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27) 지인들은 ‘목수의 아들’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기득권자들은 ‘선동꾼’이라며 두려워했다. 더러는 ‘요한 세례자’라고, ‘엘리야’라고,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당신은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이는 베드로다. 그의 고백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교회를 세웠고, 지켰고, 넓혔다. 카스틸리오네 ‘백준도’(百駿圖, 1728년,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동물화 중 대표작, 물속 그림자마저 출렁인다. 카스틸리오네 ‘아옥석지모탕구도’(阿..

성 경 자 료 실 2021.09.08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0) 서양 과학기술의 중국 전래

최신 수학·천문학 전해졌지만 ‘중화주의’ 높은 벽 가로막혀 복음전파 나섰던 예수회원들 서학서 번역해 과학기술 소개 서양천문학과 지리학 비롯해 근대과학 폭넓게 다뤘음에도 뿌리 깊은 현지 이념 극복 못해 마테오 리치의 스승이자 과학기술 서학서의 초기 원저자인 클라비우스.이진현 신부 제공 “선이란 길이만 있고 폭이 없는 것으로 평면 하나에 빛이 비침과 안 비침 사이 틈과 같다.” 이것은 마테오 리치와 서광계가 공동번역한 「기하원본」(幾何原本, 1607)에서 선을 정의하는 구절이다. 원래 유클리드의 「원론」(Elements)은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선은 폭이 없는 길이다”로 시작한다. 사전 설명도 주해도 없이 최소한의 간결한 정의로 추상적 공리체계를 전개한다. “A는 B다”로 정의 내리는 순간 한정되고 ..

성 경 자 료 실 2021.08.24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9) 조선 연행사의 북경 성당 방문 이야기

연행사 필수 코스였던 천주당, 신앙 전달의 다리를 놓다 조선 외교사절단 ‘연행사’ 서양 과학기술 접하는 창구로 천주당 찾아 선교사들과 교류 한국교회 첫 영세자 이승훈도 연행사 일원으로 북경 방문 연행사도(燕行使圖).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출처 숭대시보(http://www.ssunews.net) 조선 연행사(燕行使)가 본 북경의 성당들은 그야말로 신세계이고, 별천지였다. 서양의 신기한 문물로 가득찬 성당은 뒤이어 파견되는 연행사의 인기 만점 견학코스가 됐다. 그들은 북경의 성당에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고, 무엇을 체험했으며, 어떤 문화충격을 받았을까? 연행사의 성당 방문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먼저 동서남북 네 곳에 성당이 있었던 청나라 수도 북경부터 살펴보고 연행사의 흔적을 ..

성 경 자 료 실 2021.08.07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8) 첫 중국인 사제이자 주교 - 나문조(羅文藻)

선교사 추방되던 어려운 시기에 중국 선교 도맡아 도미니코회 입회 후 사제품 필리핀-중국 오가며 선교활동 화합과 성실함 통해 큰 성과 남경교구장 주교 된 이후 중국인 성직자 필요성 강조 선교 관할 지역이던 조선에 선교사 파견 꿈 꾸기도 대만 가오슝(高雄)에 있는 문조외국어대학에 세워진 나문조 동상. 문조외국어대학은 나문조의 이름을 따서 1966년 우르슬라수녀회가 설립했다.조한건 신부 제공 나문조(羅文藻, Gregorius Lopez, 1616~1691)는 중국인 최초의 사제이면서 최초의 주교이기도 하다. 나문조의 생애는 한 개인의 역사를 넘어 중국 천주교회 역사의 한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나문조는 자신의 선교 관할 지역이었던 조선에 선교사 파견의 꿈을 꾸기도 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 역사와도 무관하지..

성 경 자 료 실 2021.07.26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7) 전통과 신학의 100년 다툼 - 중국의례논쟁

제사 허용 여부 따라 전교 활동도 ‘갈팡질팡’ 효경의 표현으로 제사 허용한 예수회 적응주의 선교와 달리 도미니코회 등 다른 수도회는 미신적 종교의례로 금지 요청 ‘제사 금지’ 교회 결정에 따라 선교사 추방되고 선교 금지돼 홍표(紅票, Red Manifesto). 홍표를 지참하고 홍표에 기록된 정보를 가져오는 서양인은 신뢰하겠다며 1716년 9월 17일 광주에서 만주어, 중국어, 라틴어로 발행해 서양인에게 발급한 표.신의식 교수 제공 중국의례논쟁(中國儀禮論爭, Controversia de ritibus)은 예수회와 예수회를 제외한 여러 수도회(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아우구스티노회, 파리 외방 전교회) 간에 1634년부터 1742년까지 있었던 ‘Deus’의 용어사용, 조상제사(祭祖), 공자제사(祀孔)의 ..

성 경 자 료 실 2021.07.10